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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이 동아리가 되고 독서가 수업이 돼야 합니다”

입력
2016.05.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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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는 독서동아리’ 출간

“사람은 어떻게 독자가 되는가”

고민하며 세계의 사례 담아

초보들도 쉽게 운영하게 도움

사교육 의존하는 한국 독서교육

학원서도 대부분 강의 받아 적어

자신과 다른 의견에 열려 있고

스스로 해석하는 학교 수업 필요

독서동아리 연구에 매진해온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가 독서동아리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독서동아리 연구에 매진해온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가 독서동아리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독서동아리에는 다섯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모여 읽기’는 각자 자신이 원하는 책을 읽고, 그 감상을 나눕니다. 아주 쉽고 간단하지요. ‘모여 듣기’는 같은 책을 함께 낭독하고, 듣고 감상을 나눕니다. 읽는 과정을 함께하기에 ‘웃고, 긴장하고, 놀라고, 감탄하고, 시원해 하는’ 등의 반응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읽기 공동체를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죠. ‘감상 나누기’는 ‘말로 나누는 독후감’ 비슷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 변화된 나에 대해 말하는 모임입니다. ‘토론하기’는 회원들이 제기한 질문(논제)을 놓고 각자 주장과 의견을 나눕니다. 말로 하는 논술인 셈이죠. ‘통합적으로 읽고 활동하기’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고 창작 활동을 합니다. 한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다른 책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제3의 아이디어를 만들어 가는 활동이 핵심이지요.”

김은하 책과교육연구소 대표는 요즈음 늦봄의 농부처럼 바쁘다. 아침과 저녁을 나누어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책의 텃밭을 갈고, 같이 읽기를 씨 뿌리느라 분주하다. ‘처음 시작하는 독서동아리’가 출간된 지 고작 한 달, 독서동아리를 꾸리고자 했던 사람들 중에 그사이 이 책을 손에 들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전 세계 현장으로부터 독서동아리 사례를 수집하고 좋은 운영을 고민해온 김 대표의 연구 성과가 집약된 책으로, 독서동아리 관련 이론은 물론 워크북까지 겸하도록 편집되어 초보일지라도 독서동아리를 쉽게 운영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사람은 어떻게 독자가 되는가?’ 제 평생의 화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면서 단계적으로 읽기를 습득해 갑니다. 읽기를 통해 글자를 파악하고, 의미를 파악하고, 느낌을 함께 나누죠. 읽기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자기 내면으로 거의 고스란히 옮길 수 있게 합니다. 기적 같은 일이죠. ‘읽기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제 마음속에는 항상 이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조금 달리 물을 수도 있습니다. ‘책을 매개로 해서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맺어지는가?’가령, 부모와 자식, 친구와 친구, 선생과 학생, 형제와 자매 사이에 책이 있으면, 그 관계는 얼마나, 어떻게 달라질까요?”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쏟아진다. 갑자기, 주변 공기가 후끈 더워진다. 초여름 날씨 탓은 결코 아니다. 책이 존재하는 곳마다 고민의 닻을 내리고, 의문의 바다를 파고들어 조금씩 답을 새겨 간다. ‘영국의 독서교육’,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 등이 그런 식으로 인간과 책 사이를 오래도록 탐험한 결과, 세상에 나왔다. 김 대표에게 독서교육은, 한 사람의 일생 안에 책이 들어서면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탐구와, 한 사람의 일생 안으로 책을 들임으로써 마음의 두께를 굳히려는 실노력이 교차로를 이루는 곳이다. 독서동아리 연구 역시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제 관심은 독서동아리 자체가 아니라 독서동아리를 꾸릴 수 있는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선진국일수록 국정이든, 검정이든 교과서가 있는 나라가 드물죠. 학교에서는 책을 읽고 학생들이 그 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수업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급 자체가 일종의 독서동아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독서교육이 주로 사교육 시장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나마 대화나 놀이나 토론보다는 학교 수업과 유사한 형태로, 주로 학원 선생님이 강의하고 학생들은 듣고 받아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서가 어쩌다 하는 과외 활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수업이 된다. 학생의 자율 학습에 기반을 둔 토론이 수업의 일상인 학교를 이룩하고, 오랜 학습을 통해 자신과 다른 의견에 열려 있는 민주적 시민을 양성하는 사회! 상상만 해도 즐거운 꿈이다. 독서 민주주의는 어쩌면 다른 모든 민주주의에 앞선다. 김은하 대표는 초등학교 등에서 부모나 학생이 독서동아리를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멘토 없이도 스스로 독서동아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하는 일을 한다.

“부모나 교사가 자기 의견을 지도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똑같이 책도 읽고 독후감도 쓰면서 낮은 자리로 내려앉는 게 우선 중요합니다. 어른들 해석을 강요당하는 식으로 교육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해석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창의성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토론을 통해 자기 의견을 합리적으로 수정해 본 사람만이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토론이 깊어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으로도 이미 거대한 상실입니다.”

독서동아리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준비 모임’을 통해 같이할 규칙을 설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배우는 것도 있으면서 속마음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서도록 세세한 규칙을 정하는 게 좋다. 모임마다 서로 역할을 나누어 일을 맡고, 모르는 부분을 서로 묻고 나누는 방식이 괜찮다. ‘서로 같이 읽는 것에 감사하기’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반갑게 맞이하기’ 등 작은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면서 서로 격려하는 일이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두세 권 골라 와서 책 친구들 앞에서 설명한 후, 10~15분 정도 눈앞에서 읽을 시간을 준 후, 투표를 통해 고르는 게 가장 좋습니다. 결론이 너무 빤하지 않고 열려 있는 책, 즉 해석이 중층성이 있는 책일수록 같이 읽기에 효과적입니다. 고전과 같이 큰 질문을 던지는 책과 트렌드 서적과 같이 작고 긴급한 질문을 던지는 책을 오가는 것이 의미 있는 토론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책과 책이 서로 질문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독서동아리를 잘하려면, 성공 경험이 자주 있을 수 있도록, 순간순간 매듭을 잘 짓고 가는 게 중요하다. 가령, 열 번 정도 모여서 일정한 주제의 책을 소화하고 기분 좋게 헤어지는 것도 괜찮다. 억지로 길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동아리 자체에 대한 이야기 시간을 가지면서 시즌을 반복하는 것이 더 좋다. 김은하 대표의 목소리가 힘차게 가슴으로 파고든다.

“책을 같이 읽으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가령, 유럽에는 ‘엄마와 딸’ 동아리가 흔합니다. 변화된 사회에서 새로운 고민을 하는 딸들과 다양한 사회 경험이 있는 엄마들 이야기가 서로 섞이면서, 서로의 인생 전반에서 감동적인 변화가 일어나곤 합니다. 공격적이지 않다면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회적 장을 만나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깊은 경험일 겁니다.”

아아, 이 여름, 같이 읽을 벗을 찾아 만날 수 있다면, 자기 인생에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장은수 출판평론가ㆍ순천향대 초빙교수

공동기획: 한국일보ㆍ책읽는사회문화재단

김은하 대표가 추천하는 “책 읽는 인간은 어떻게 키워질까?”를 다룬 도서들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 최은희 지음, 우리교육, 2006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지음, 이정임 역, 문학과지성사, 2004

책 읽는 뇌, 매리언 울프 지음, 이희수 옮김, 살림, 2009

책으로 말 걸기, 고정원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2014

학교 속의 문맹자들, 엄훈 지음, 우리교육, 2012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경기도중등독서토론교육연구회, 서해문집, 2014

문해교육, 파울로 프레이리, 도날도 마세도 지음, 허준 옮김, 학이시습, 2014

희망의 인문학, 얼 쇼리스 지음, 고병헌, 이병곤, 임정아 옮김, 이매진, 2006

읽는다는 것의 역사, 로제 샤르티에, 굴리엘모 카발로 엮음, 이종삼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

도란도란 책모임, 백화현, 학교도서관저널, 2013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의 자율적인 독서동아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데 부싯돌이 된 책. 아이들을 공감하고 협력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 어떤 이론서보다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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