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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동양인이 매력있는 주연이 되려면

입력
2016.05.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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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조를 주연으로!”(#StarringJohnCho) 최근 소셜 미디어에선 영화 스타트랙 등으로 우리에게도 얼굴이 익숙한 한국계 할리우드 영화배우 존 조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라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가 로맨스나 히어로 물의 주인공으로 나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 표출된 것이라고 한다.

캠페인의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러 기억과 상념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존 조가 조연을 맡은 ‘스타트랙 더 비기닝’이 개봉되었을 당시, 나는 런던 레스터 스퀘어의 한 영화관에 앉아 있었다. TV 시리즈물 원작에서는 창백한 로봇 얼굴(아시아 남자 얼굴이다)로 기계적인 계산을 쉬지 않고 수행하는 ‘데이터’라는 인물이 있던 자리에 술루라는 이름을 가진 동양인 존이 앉아 있었다. 다분히 서구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의식이 깔려 있었던 1970년대 원작의 고정관념을 깨고 영화 장면 곳곳에서 캐릭터에 다채로움과 활력을 부여하려는 감독의 의중이 읽혔다.

흥미로웠던 것은 감독의 그런 새로운 묘사들에 대한 영국인을 위시한 서구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예컨대 슬루(존 조 배역)가 엔터프라이즈호를 발진하려고 할 때 전원 스위치를 깜빡 켜지 않는 인간적인 실수를 하자 이상하리만치 여러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마치 시원하다는 듯)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다 커크 선장을 구하기 위해 슬루가 분연히 우주선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 광선 검을 들고 적과의 싸움을 이끄는 장면에선 뭔가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물론 당시의 내 느낌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이다. 다만 10, 20대 때 서구 사회에서 살면서 아시아계 애들이 공부는 잘할지라도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능숙하고 멋지게 모는 것은 본래 우리 서양 남자의 몫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거나, 리더십이나 남성적인 강인함(그리고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모든 행사와 스포츠에선 서양 학우들이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던 문화적 행간들이 겹쳐서 이해되었다.

돌이켜 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고, 동양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유소년 시절이었던 1980년대에는 “중국 애, 일본 애”하는 놀림도 많이 받았었는데, 90년대로 들어오니 일본인은 새롭게 존경하고 중국인은 여전히 대놓고 멸시했었다. 2000년대로 들어오니 이제 영국에서도 더 이상 중국 사람들을 대놓고는 멸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 주변엔 빨리 늙지 않고 세련된 외모의 동양 여자들을 부러워하는 서양 여자들이나, 금발이나 갈색 머리의 예쁘고 똑똑한 서양 여자와 사귀는 동양 남자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국력과 부의 수준의 변모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양 남자와 여자 개인이 국제적인 무대에서 보다 매력 있는 주연 역할을 하려면 지금보다 갖춰야 할 것도 많다고 느낀다. 내 경험으로 그것은 값비싼 자동차, 옷, 핸드백 같은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화술과 유머, 배어 나오는 자신감 등이 서양 문화와 친화성을 갖는다면, 그에 더해 자신이 속한 동양의 역사문화와 사회로부터 고유의 가치를 체화하고 자연스러운 메시지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인간적 매력이 중요하다고 본다. 역사와 문화가 축적된 사회일수록, 단지 졸부를 존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존 조 주연’ 운동을 시작한 윌리엄 유는 SBS와 인터뷰에서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영화에서 리더나 캡틴, 주위에 힘과 용기를 주는 인물로 나오지 않는다면 나도 그런 자질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어렵다”고 캠페인의 동기를 설명했다. 할리우드 영화도 변해야 하겠지만, 반대로 실제 현실의 무대에서 리더나 캡틴으로서의 영감, 주위에 힘과 용기를 주는 동양인들이 많이 나와야 보다 매력적인 동양인의 상이 현실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럴 만한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는가. 그런 인물을 키우고 있는가. 우리 동양인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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