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황의 늪으로 빠져든 베네수엘라에서 수익 악화를 견디다 못한 대형 항공사들이 줄지어 여객기 취항을 포기하고 있다. 세계 4위 규모의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이 운항 중단 결정을 발표하면서 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에 고립 우려까지 더하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2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다음달 17일부터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간 여객기 운항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베네수엘라 내 유일하게 카라카스에만 취항해 온 루프트한자 측은 수익 악화를 이유로 들며 “향후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중단 조치를 지속한다”고 밝혔다. 매출 기준으로 유럽 최대 규모인 루프트한자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루프트한자 측은 중단 원인으로 카라카스 노선의 수요 감소 및 수익 환원 지연을 지목했다. 베네수엘라는 저유가 위기가 3년째 이어지면서 최근 국가비상사태에 돌입, 식료품 부족으로 인한 폭동이 빈발하는 등 정상적인 국가경제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루프트한자 성명에 따르면 카라카스~프랑크푸르트 구간 판매는 지난해 급격히 줄어들어 올해 1분기까지 파장이 지속됐다. 항공사뿐 아니라 코카콜라 등 제조업체들도 제품 생산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금융통제 또한 항공사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2003년 우고 차베스 정권 이후 환율을 통제하며 현재 700%대까지 치솟은 물가상승률을 해소하지 못한 채 부채만 쌓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항공사들이 환전에 가로막혀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매출을 자국으로 환원하지 못하는 사이 정부 부채는 수백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루프트한자에 앞서 유수의 대형 항공사들이 줄지어 베네수엘라를 빠져나갔다. 세계 1위의 아메리칸항공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항공사에 진 5억9,200만달러(약7,056억원)의 부채를 탕감해주고 지난달 4일 카라카스~뉴욕 노선의 취항을 중단했다. 에어캐나다, 미국 델타항공, 이탈리아 알리탈리아 항공들도 베네수엘라 구간 운항을 멈추거나 축소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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