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 후 3세기경 로마제국은 해적과 노상강도, 그리고 스스로 무장한 야만 부족집단들의 폭력으로 가득했다. 카르타고와의 마지막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군대의 임무는 정규전이 아니라 제국 도처에서 출몰하는 이들 소규모 폭력집단들을 소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로마군대의 소탕실적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전투와 전쟁 비용으로 인해 제국질서와 군대는 쇠퇴해갔으며, 로마문명은 오히려 더욱더 창궐하는 폭력집단들에 의해 붕괴되어갔다.
오늘날 테러리즘 현상은 어쩌면 로마제국 쇠퇴기의 여러 소규모 폭력과 약탈, 반란 등의 현상과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 2차 대전과 냉전이라는 극단적인 국가 간 무력충돌 이후 오히려 비 국가 폭력 행위자들의 소규모 약탈과 폭력, 저강도 전쟁 등이 국가들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가의 상대적인 자원과 능력과 힘은 소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사이버, 세계화, 경제구조의 변화, 기술의 발달, 탈 근대화 같은 국가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진행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수 세기 간에 걸쳐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왔던 안전장치인 ‘국가’라는 수단에 결함이 발생한 것으로 이해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파괴의 양식’도래
테러리즘을 이해하는데 유념해야 할 것은 이 문제가 오늘날 이행되는 정보화시대로의 패러다임 변화와 맞물려있다는 점이다. 엘빈 토플러의 지적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양식 또는 삶의 방식은 파괴양식과 같은 원리에 의해 연동되어 있다. 즉, 우리가 영유하는 일상생활인 쇼핑, 인터넷 채팅, 소비재의 생산, 노동의 양식을 결정하는 원리와 테러리스트들이 폭탄을 터트리고 사람을 죽이며 건물을 파괴하는 등의 폭력과 살인의 양식을 결정하는 원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1세기라는 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생산양식의 새로운 원리인 생산에서의 ‘맞춤형 생산-소비양식’과 똑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는 ‘맞춤형 파괴’ 또는 ‘틈새 전쟁’이라는 새로운 파괴의 양식도 만들어 냈다. 과거 20세기 ‘대량 파괴 양식’은 그 내재된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는 대량 파괴가 엄청난 재정적, 도덕적 비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 예로 2차대전시 베를린, 런던, 드레스덴, 스탈린그라드, 히로시마 등지에서의 대규모 파괴는 전형적인 고비용, 대량 파괴 구조의 극단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대량 파괴양식의 딜레마는 냉전 구도 하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핵무기, 핵 잠수함, 항공모함, 그리고 대규모 전략 공군들은 미국과 소련이 치른 재정적, 도덕적 비용들의 사례들이다. 이러한 과다비용지출의 문제점은 과거의 대량파괴양식이 21세기에는 실제로 현실화 될 가능성을 제한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들어 작은 규모의 ‘맞춤형 파괴’라는 새로운 파괴의 양식으로의 진화를 유도하였다.
새로운 파괴의 양식은 이를 초래하는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집단의 특성에 따라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그룹은 ‘대량파괴양식’을 감당할 수 있는 재정과 기술적 역량은 갖추고 있으나, 그들이 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또는 윤리적 입장 때문에 대량파괴에 따른 도덕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행위자들이다. 즉, 미국이나 한국, 영국이나 독일 등과 같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따른 해결책으로 이들 국가는 파괴 행위에 들어가는 인적, 물적, 정치적 또는 윤리적 비용을 최소화 하면서 꼭 필요한 타깃만을 선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첨단 무기들을 개발함으로써 파괴에 따른 도덕적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스마트 폭탄이나 레이저 유도 무기, 그리고 무인 전투기나 전투 로봇, 인공지능의 개발 등이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의 대표적 예이다.
한편, 또 다른 그룹은 그들이 처한 약자적인 입장 때문에 파괴에 따른 도덕적 비용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으나 대량파괴의 양식을 감당할 만한 재정적, 기술적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이다. 이러한 행위자들은 이란이나 이라크, 시리아나 리비아 또는 북한 같은 가난한 제 3세계 국가이거나 알 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탈레반, 하마스, 그리고 헤즈불라 등 비국가 테러집단들이다. 이들은 재정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파괴의 행위자들과의 동일한 양식에 의한 경쟁을 사실상 포기해야 했고 그에 따른 대체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다. 자살 폭탄테러나 인질 납치, 핵 테러 같은 테러리즘은 이러한 재정적으로 열등한 파괴의 행위자 그룹이 선택할 수 있는 맞춤 파괴라는 새로운 파괴의 양식이다. 비용적 한계와 열등한 기술력 때문에 첨단 무기에 대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이들은 대신 값싼 인력을 사용한 테러리즘의 방식으로 그들의 파괴 행위를 수행하며 적재적소의 타깃을 값 싸게 타격함으로써 그들의 재정적 열등성을 극복하고 전략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맞춤 파괴를 실행한다.

미래전쟁은 더 이상 국가간 전쟁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테러리즘은 약자가 선택한 새로운 맞춤파괴의 양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궁극적으로 첨단 전쟁과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동일한 형태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즉, 인공지능이나 첨단 컴퓨터 시스템 또는 위성과 결합된 미사일이나 스마트 폭탄, 또는 드론 등으로 지정된 대상을 선별타격 함으로서 비용대비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파괴의 양식은 자살 폭탄테러범을 이용해 의도한 시간에 목표한 타격 대상을 공격함으로서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테러 행위자의 파괴양식과 같은 전쟁양식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보화 시대에는 폭력수단의 사용 또는 폭력적 능력소유에 있어서 민주화 또는 분권화 경향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그간 폭력적 능력을 독점하던 국가의 개인이나 사적 집단 등과 같은 비 국가 행위자들에 대한 상대적 우위가 상실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개인 등 비 국가 행위자들이 살상무기의 생산과 획득에 대한 접근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산업시대에는 다른 평화적 경제 부문들처럼 무기의 생산에서 개인 등의 비 국가 행위자들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무기는 군수산업의 형태로 대량생산되었으며 국가가 무기를 통제했고 국가부문의 폭력적 능력은 따라서 민간부문에 비해 압도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의 확장과 정보화의 심화, 3D 프린팅, 드론과 사물인터넷, 전투로봇, 인공지능 등의 등장은 점차 비 국가 부문들의 폭력적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이 비 국가 부문들의 국가에 대한 상대적 폭력능력이 보다 비슷해지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핵무기 기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분명한 사실은 핵무기 기술이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 시대의 것이란 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테러리즘은 미래전쟁의 한 양식일 수 있다. 정보화 시대가 갖는 특징인 생산양식과 파괴양식의 변화는 미래전쟁이 점차 소형ㆍ초소형 무기와 소규모 부대에 의한 작은 규모의 맞춤형 파괴로 이행하도록 할지 모른다. 그러한 전쟁은 아마도 우리에게 익숙한 전쟁은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은 여전히 전쟁일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말처럼 전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나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한 다른 형태의 정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편 폭력의 민주화 경향은 비국가 부문에 대한 국가의 통제능력을 상당히 약화시킬 것이다. 산업시대인 20세기의 위협이 압도적인 물리력을 가진 독재국가로부터 왔다면, 21세기 위협은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들과 같은 다수의 ‘작은 악마’들로부터 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21세기 테러리즘의 문제는 국가의 권위와 능력이 약화되는 것과 맞물려 있는 반면,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위협이었던 폭압적 독재국가 또는 통제국가의 잔상에 몰입된 나머지 미래의 위협인 테러리즘의 파괴적 실체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따라서 과거의 위협과 미래의 위협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미래의 위협에 대한 보호 장치는 국가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전쟁은 더 이상 국가 간의 게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미래사회의 파괴양식에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윤민우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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