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을 미덕이라 여기는 시대에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서울 사비나미술관은 우리가 인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시간의 성질에 주목한 전시 ‘60Sec Art’를 7월 10일까지 열고 있다. ‘60초’로 대변되는 짧은 시간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극단적으로는 초 단위까지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자 모든 것이 빠르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이다.
핸드드로잉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윤규’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심래정 작가가 흰 배경에 검은 펜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가상인물 윤규는 전시가 진행되는 52일 동안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늙어간다. 전시 시작 후 9일이 흐른 29일 전시장에서 확인한 윤규는 흑백임에도 불구하고 핏기가 없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핼쑥한 모습이었다. 전날의 폭식으로 찐 살을 스스로 칼로 도려낸 탓이었다. 사비나미술관 블로그에서 확인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정면을 바라보는 앳된 모습의 윤규(전시 개막 직전인 20일),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윤규(21일), 감기에 걸려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놓고 앓고 있는 윤규(22일)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지 않고서야 사람에게서 ‘시간’을 읽어낸다는 건 어려운 일 아닌가”라고 물으며 입을 뗀 최재혁 큐레이터는 “‘어제의 윤규’보다 눈에 띄게 나이든 ‘오늘의 윤규’를 통해 관람객은 비로소 평소 인지하지 못한 채 흘려 보냈던 시간을 인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간의 평균 수명에 비한다면 아주 찰나를 사는 윤규는 60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을 내건 이번 전시와 맞닿아있기도 하다. 최 큐레이터는 “50여 일로 압축된 윤규의 일생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에 출품된 영상, 설치, 조각, 웹툰 등 130여 점의 작품은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성을 해석해 다양한 사유를 유도한다. 10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출품됐던 짤막한 애니메이션 80편을 하나로 묶은 영상은 그 자체로 지금의 문화소비 트렌드를 의미한다.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담고 있지 않은 개별 작품들은 10초 만에 다음 작품에 자리를 내주는데, 이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빠르게 생성되고 순식간에 소비됐다가 금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나 다름 없다.
60초라는 찰나의 시간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오히려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전시는,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에서 관람객이 오히려 시간을 들여 감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역설적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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