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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4년 전세 ‘의원회관’의 이사철 풍경… 방 배정의 정치학

입력
2016.05.3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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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의원들이 이번주 중으로 의원회관의 방을 비워야 하는 가운데 23일 회관 복도에 의원실에서 내놓은 버려지는 자료집이 가득히 놓여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20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의원들이 이번주 중으로 의원회관의 방을 비워야 하는 가운데 23일 회관 복도에 의원실에서 내놓은 버려지는 자료집이 가득히 놓여 있다. 오대근 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의원회관 방 배정을 받으니 초선(初選)의 정치적 입지가 실감이 나네요.”

제 20대 국회 개원일인 30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한 초선 당선자는 중간 층 구석진 곳에 있는 자신의 의원실 위치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의원실 배정은 업무 환경뿐만 아니라 4년 동안 의원 간 교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당선자들에게는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데요, 보통 선수(選數)와 나이를 기준으로 한 각 당의 자체규정에 따라 이를 배분하게 됩니다. 때문에 중진의원인 ‘선배’들은 좋은 방을 차지할 수 있는 반면 초선인 ‘후배’들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방을 배정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이번 국회에서는 각 당이 의원실 배정에 뚜렷한 특징을 보이며 ‘의원회관의 정치학’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관례대로 정치적 영향력(보통 선수가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에 따라 의원실을 배분하되, 지도부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이들을 한 층에 배치했습니다. 더민주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 최운열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초선의원들이 주로 배치 받는 4층에 함께 자리 잡았다네요. 국민의당도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가 있는 5층에 당 사무총장을 지낸 박선숙 당선자와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 등 핵심 지도부가 자리하게 됐습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대위회의서 우상호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2016-05-25(한국일보)
2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비대위회의서 우상호 원내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2016-05-25(한국일보)

더민주의 경우 애초 우 원내대표가 선거운동 시 초선 당선자들에게 ‘의원실 배정을 추첨으로 해 불이익이 없게 해주겠다’고 했으나 중진의원들의 불만 표시로 없던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더민주 관계자는 “4년 전 19대 국회 개원 때 의원회관 공사로 방 배정이 뒤죽박죽 됐고 당시 원하는 방을 얻지 못했던 재선, 3선 의원들이 추첨 배정은 말이 되느냐며 문제제기를 했다”며 “이번처럼 의원실 배정이 어려웠던 적은 처음”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새누리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당 내 사정을 반영하듯 방도 ‘계파 별 헤쳐 모인’ 모양새인데요, 친박(친박근혜)의 맏형 8선 서청원 의원은 국회 광장이 보이는 601호로 옮겼습니다. 또 인근의 648호는 원유철 전 원내대표의 방이고, 박덕흠 민경욱 이만희 당선자 가 같은 층에 자리잡았습니다. 반면 비박(비박근혜)으로 통하는 김무성계는 바로 한층 위인 7층에 터를 잡았다네요. 김무성 전 대표의 방인 706호 좌측(704호)엔 이군현 의원이, 우측(707호)엔 강석호 의원이 배치됐습니다. 그러나 강 의원 측에서는 “707호는 행운의 숫자가 2개나 들어간데다 전망이 좋아 15여명의 당선자들이 원했던 의원실”이라며 “김 전 대표와 방 배정은 관계가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의원실 호수에 정치적 의미를 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 더민주 원내대표는 당이 원내 1당으로 올라선 4ㆍ13 총선을 기념하기 위해 413호를 골랐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의 518호를, 박지원 원내대표는 6ㆍ15 남북공동선언의 615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818호를 쓰게 된 송영길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민주정부 10년을 되찾겠다는 마음으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8월 18일을 담아 의원회관 818호에서 제20대 국회 의정 활동의 첫날을 맞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인 5월 23일을 거꾸로 한 325호를 사용했는데, 이 방엔 그의 정무특보 출신 권칠승 당선자가 이사를 옵니다.

한편 조망도 좋지 않고 상징성도 없지만 경쟁이 치열한 호수도 있는데요, 문희상 더민주 의원의 454호로 거쳐 간 의원들의 당선 횟수로만 14선이라 소위 ‘기(氣)’가 좋은 방으로 통해 인기가 높습니다. 또 공천 탈락(컷오프)의 아픔을 뒤로 하고 방을 비워야 하는 유인태 의원은 자신이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김부겸 당선자에게 방(814호) 열쇠를 맡겼습니다다. 역시 컷오프 당한 정청래 의원 역시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한 손혜원 당선자에게 방(317호)까지 넘겨줬습니다. 대신 정 의원은 손 당선자의 후원회장을 맡기로 했습니다.

한편 전(前) 주인이 방을 비워주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새 주인들도 있습니다. 국회를 떠나는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20대 국회 개원일 하루 전날인 29일까지 의원실에 나온다며 짐을 그대로 놓아뒀다고 하네요. 이 방에 새로 들어오는 당선인 측에서는 “할 일이 많아 마음이 급하긴 하지만 낙선한 의원에게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습니다. ‘4년 전세’의원회관을 떠나야 하는 의원들과 그 자리를 대신할 당선자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이 아닐까 싶네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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