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 등 축적된 데이터 바탕
서식 할 만한 곳 좁혀 나가
약초 관련 카페만 3000여개
동호인 등 서너명씩 주말 원정
실력 따라 코스 분담ㆍ결과 공유
“대부분 아픈 지인 등에 선물”
돈 욕심은 버리고 소박한 취미로
“심 봤다!”
7년 차 아마추어 심마니 박호선(41)씨가 외마디 탄성을 내뱉었다. 삼을 본 순간이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머리가 3개 달린 7,8년 된 봄삼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21일 이른 새벽부터 충남 서천의 산골을 4시간 동안 뒤진 고단함이 그제야 눈 녹듯 사라졌다. 주변의 잡풀과 별다를 것 없는 모양새지만 한 뼘 남짓 크기의 약초에서 알 수 없는 영묘함이 뿜어져 나왔다.
심마니 하면 으레 세상과 단절된 채 산속을 방랑하는 고독한 약초꾼의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 하지만 박씨의 표정에서는 그런 이질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주중에는 카센터 사장이란 어엿한 직함을 갖고 있다. 10년 전 만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산 송장이나 다름 없는 삶을 살다가 산삼을 먹고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자 직접 삼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50m도 걷기 힘들었는데 산삼을 찾아 다니면서 건강도 회복했고, 재미가 붙으면서 제2의 직업이 됐다”고 말했다.
숙련된 심마니가 아니고서야 옆에 두고도 못 찾는다는 산삼을 박씨가 짧은 시간에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산악용 위성항법장치(GPS) 덕분이다. 산삼을 봐왔던 자리가 전부 기록돼 있어 현대판 심마니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물건이다.
산삼 추적 과정은 이렇다. 우선 전통 방식대로 산의 지세를 보고 산삼이 있을 법한 서식지를 점 찍는다. 삼은 보통 산 동쪽이나 북쪽 면 골짜기의 바람과 습기가 잘 통하는 곳에서 자란다. 스마트 기술은 이 때부터 위력을 발휘한다. GPS에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서식지 범위를 좁혀나가는 것이다. 박씨와 동행한 15년 차 아마추어 심마니 임채억(49)씨는 “아들이 GPS 좌표를 유산으로 물려달라고 조를 정도”라며 “가방은 안 챙겨도 꼭 품고 다니는 게 바로 GPS”라고 설명했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심마니들이 많아지면서 삼 찾기를 취미로 삼은 이들은 점점 늘고 있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공유되는 정보도 범람한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약초 관련 카페만 3,000개가 넘을 만큼 산삼 찾기는 이제 대중적 취미가 됐다. 임씨는 “전통 심마니들은 산 하나를 타기 위해 사흘 밤낮을 걸어 다녔겠지만 요즘은 주5일제가 정착된 데다 승용차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어 주말 당일치기도 가능해졌다”고 귀띔했다.
아마추어 심마니들 사이에도 엄연한 위계질서는 있다. 임씨와 박씨도 7년 된 사제지간이다. 위계는 100% 실력만으로 결정된다. 3,4명이 무리를 이뤄 산행에 나서도 고수가 난코스, 초보가 쉬운 코스를 맡아 수색하고 결과는 똑같이 나누는 식이다. 서로간에 믿음이 없으면 삼 하나 두고 이전투구가 벌어지기도 한다. 박씨는 “결국 삼을 얼마나 잘 보느냐가 그 사람의 실력”이라며 “심마니 세계는 불신이 팽배해도 우리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끈끈한 믿음이 있어서였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심마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욕(無慾ㆍ욕심이 없음)’이다. 어쩌다 ‘대물’을 만나면 정식으로 내다 팔아 목돈을 손에 쥐기도 하지만 대개는 ‘가족에게 한 뿌리씩 선물하겠다’는 소박한 마음가짐으로 산을 탄다. 분명 있어야 할 자리에 가도 없는 게 산삼이고, 지쳐 포기하려 하면 어디선가 빨간색 열매를 흔들며 인사하는 게 또 삼이기 때문이다.
결국 산삼 찾기란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삼과 나 사이의 인연을 찾아가는 과정이란 것이 두 사람의 조언이다. 임씨는 “진짜 좋은 삼을 보고 싶으면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행여 다른 사람의 농장에서 삼을 훔치거나, 산을 해치는 행동을 한다면 다음 산행도 마음 편히 다닐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을 만나고 싶어 1년 365일 중 50일은 전국을 떠도는 ‘스마트 심마니’들. 이들은 산삼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천= 글ㆍ사진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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