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자 역시 일반 노동자의 20배
지방간, 고혈압 등 만성질환 많아
취업실패 이후 건강악화 악순환
지난해 말 노사 합의로 올 2월 복직한 쌍용자동차 생산직 노동자 서모(40)씨는 2009년 5월 해고 이후 오랫동안 매운 음식을 먹지 못했다. 생계에 대한 불안 등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며 속이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위궤양과 위염, 두통 같은 병이 생기는 바람에 1년 간 통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더러 우울감도 들었다. 그럴 때면 만사 다 귀찮고 사람 만나기도 싫었다. 자기가 왜 쫓겨나야 했는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항상 피곤했다. 일터로 다시 돌아오고부터 정신적 고통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7년 가까운 해고 기간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우울증이 도진다. 트라우마(외상성 신경증)다. 서씨는 “전쟁터였던 2009년 대량해고 직후의 공장 상황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아직 남은 해고자가 속히 돌아오길 빈다”고 말했다.
해고되면 아프다. 복직하면 훨씬 나아지지만 생채기는 남는다. 조선업 등이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 가운데 쌍용차 정리해고자와 복직자의 건강상태를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29일 한국보건사회학회 학술지 ‘보건과 사회과학’ 최신호에 수록된 고려대 보건과학과 박사과정생 박주영씨의 논문 ‘해고자와 복직자의 건강 비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이전 1년 동안 쌍용차 해고자의 89.0%와 복직자 62.0%가 두통 및 눈의 피로를, 해고자 88.6%와 복직자 67.1%가 전신피로를, 해고자 74.8%와 복직자 30.1%가 우울ㆍ불안장애를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고자의 경우 일반 노동자보다 우울ㆍ불안장애는 무려 49.8배, 두통은 5.2배, 전신피로는 4배에 달한다. 복직자 역시 일반 노동자의 건강상태와는 큰 차이가 난다. 우울ㆍ불안장애 20.1배, 두통 3.6배, 전신피로는 3배나 많았다. 스스로 진단한 자기 건강수준 차이도 현저했다. “건강이 나쁘다”고 평가한 응답자 비율은 해고자가 39.1%로 일반 노동자(2.3%)보다 17배나 많았다. 복직자는 24.1%였다.
해고자와 복직자만 비교했을 때 지방간,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진단받은 경우는 해고자가 복직자보다 2,3배 많았다. 위십이지장궤양, 지방간, 고혈압을 앓아본 해고자가 각각 21.1%, 19.0%, 23.7%인 데 비해 복직자는 7.7%, 9.4%, 13.1%였다. 통상 해고로 건강이 악화되면 이 때문에 재취업이 안 되는 악순환이 존재하는데, 이번 연구결과는 복직이 되면 건강상태가 상당히 좋아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연구는 지난해 5, 6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벌인 설문조사 중 해고자 140명, 복직자 176명에 대한 자료를 활용했으며, 2011년 제3차 근로환경조사 중 ‘자동차용 엔진 및 자동차 제조업’ 집단을 일반 노동자로 비교했다. 해고ㆍ복직자의 건강 상태를 비교한 국내 논문은 처음이다. 박씨는 “실업자 지원이 매우 부족한 한국 상황을 감안할 때 해고자의 건강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며 “해고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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