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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프라 내전과 국경 없는 의사회

입력
2016.05.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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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5월 30일

국경 없는 의사회
국경 없는 의사회

1967년 5월 30일, 나이지리아 남동부 3개 주가 비아프라(Biafra)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고, 한 달여 뒤 나이지리아의 선전포고로 내전이 시작했다. 공화국이 존속한 70년 1월 15일까지 2년 7개월 동안 100만~200만 명이 전사하고 50여 만 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희생됐다.

나이지리아는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식민지 시절 나이지리아 남부는 상대적으로 혜택 받았다. 그곳 이보(Ibo)족과 요루바(Yoruba)족은 기독교로 개종해 다수의 무슬림 하우사족 등을 억압하는 식민지 통치에 협력했다. 지역ㆍ부족ㆍ종교 갈등은 20세기 초 영국 지배가 시작되면서부터 실질적으로 시작되고 심화됐다.

1966년 이보족 출신 군인이 쿠데타로 독립정부를 무너뜨린 뒤 독재 정권을 수립, 갈등을 봉합하고 있던 지역 연방제를 폐지했다. 이보족 지배체제를 구축하려던 그 시도는 그 해 독재자의 암살로 무산됐고, 야쿠부 고원이라는 북부 출신 군인이 새로 권력을 잡는다. 그는 나이지리아를 12개 주로 개편해 이보족 남부 거점에 대한 분리 통치를 시도했고, 그에 이보족 출신 오주쿠 중령이 지지자를 모아 분리 독립을 선포한 거였다.

전쟁은 러시아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중동과 이스라엘과 남아공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세해 각각 정부군과 비아프라군을 지원하고 무기를 판매ㆍ원조하면서 커져갔다. 탄자니아 가봉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는 비아프라를 정식 주권국가로 승인하기도 했다.

희생자가 급증하고 극심한 기아 상황에 아사자까지 속출했지만 적십자사를 비롯한 국제 구호단체들은 몸을 사렸다. 교전 지역이라 위험하기도 했지만, 비아프라 구호활동이 정치적 지지의 의도로 이해될 것을 그들은 두려워했다.

최근 한 인기 드라마로도 소개된 ‘국경 없는 의사회’가 첫 활동을 시작한 게 그 와중인 1968년 비아프라에서였다. 그들은 조직 없이 개인 자격으로 전장에 들어가 난민들을 돕고 부상자를 치료했다. 과장된 비아냥이겠지만, 국제적십자사가 하는 일이란 ‘상황’이 대충 정리된 뒤 방송 카메라와 함께 현장에 들어가 텐트부터 친다는 말이 비롯된 것도 비아프라 내전이었다.

현재 비아프라는 망명정부와 독립을 위한 몇 단체로만 존재한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71년 정식 발족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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