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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의 뜬 트렌드 잡기] 이미 생활 속에 스며든 알파고 충격… 인공지능 비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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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의 뜬 트렌드 잡기] 이미 생활 속에 스며든 알파고 충격… 인공지능 비서 혁명

입력
2016.05.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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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알파고 충격’이 한국을 강타했다. 바둑 고수 이세돌 9단이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충격의 4대1 패배를 당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정부는 대책회의를 열고 5년간 1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또 대기업 주도의 인공지능연구소를 세우기로 했다. 갑자기 호떡집에 불이 난 느낌이었다.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성큼 다가와 있다. 미국 가정에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 비서가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마존 에코’가 있다.

미국 휩쓴 똑똑한 AI ‘아마존 에코’

지난해 말 미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화제의 제품을 하나 사왔다. 아마존에서 나온 에코라는 원통형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다. 이미 블루투스 스피커는 많이 있는 데도 이 제품을 구입한 이유는 무엇보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마존은 2014년 여름 ‘파이어폰’이라는 첫 스마트폰을 내놨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그런 다음 같은 해 11월에 평범해 보이는 원통형 스피커를 내놓았다. ‘누가 저런 것을 살까, 아마존도 어지간히 만들 게 없었나 보다’하는 생각도 잠시, 이 제품은 놀랄만한 히트 상품이 됐다. 에코는 아마존 사이트에서만 3만6,000개의 상품평이 달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낳았다. 평균 평점은 5점 만점에 4.4점이었다. 아마존은 판매량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300만개 이상 판매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의 원통형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 '아마존 에코'는 이용자가 목소리로 말을 걸면 알아서 명령을 수행한다. 아마존 제공
인공지능 기반의 원통형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 '아마존 에코'는 이용자가 목소리로 말을 걸면 알아서 명령을 수행한다. 아마존 제공

다른 블루투스 스피커와 구별되는 이 제품의 특징은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비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항상 켜져 있기 때문에 전원 단추를 누르지 않아도 그냥 “알렉사”라고 부르면 번쩍거리며 스피커가 깨어난다. “플레이 뮤직”(Play music)이라고 음악을 틀어달라 주문하면 알아서 이용자가 미리 아마존 클라우드에 저장해 둔 곡을 틀어준다. 소리가 너무 크면 “볼륨 다운”(Volume downㆍ음량을 낮춰줘)이라고만 말하면 된다. 음악 재생을 중단시키려면 “알렉사, 스톱”(Alexa, stop)이라 하면 된다. 라면을 끊일 때도 냄비에 면을 넣으면서 “알렉사, 셋 더 타이머 포 포미닛”(Alexa, set the timer for four minute)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4분 뒤에 알람을 울려준다.

영어 원어민이 아닌 탓에 이 제품을 집에 가져와서 좀 유치하게 쓰고 있지만 아내는 아주 편리해 한다. 주로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를 할 때 음악을 듣는 용도로 쓴다.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누를 필요가 없이 음성만으로 켜고 끌 수 있으니 편하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딱 맞춘 제품인 것이다.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특정 음악을 틀거나 날씨를 알아보거나 뉴스를 읽는 것은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말로 명령하는 것은 4살짜리 어린 꼬마도 쉽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집안 어디에서나 “알렉사”하고 부른 다음에 물어보면 대답해준다.

사물인터넷(IoT)용 제품을 연결하면 음성으로 조명을 켜거나 끌 수 있다. 아마존에서 자주 쓰는 일용품을 주문할 수 있다. 심지어 피자를 주문하거나 차고에 있는 자동차의 시동을 미리 켜고, 우버 택시를 호출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알렉사와 친구처럼 대화하기도 한다. 편리하고 친절한 인공지능 개인 비서다.

미국의 한 가족이 원통형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 아마존 에코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한 가족이 원통형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 아마존 에코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에코의 성공에 고무된 아마존은 이 제품을 사물인터넷 허브로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른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와 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기술 표준을 외부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확장성도 높였다. 인터넷에서는 심지어 아마존 에코와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를 연결해 “알렉사, 테슬라를 꺼내줘”라는 명령으로 테슬라를 차고에서 자동으로 꺼내는 사람까지 나왔다. 아마존에 올라온 상품평에서 한 사용자는 “내사랑, 알렉사가 온 뒤로 외롭지 않게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사실 아마존 에코는 파이어폰의 실패를 딛고 나온 제품이다. 파이어폰은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개발된 음성 인식, 인공지능 기술이 에코에 적용되는 바람에 의외의 히트상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구글ㆍ애플도 가세… 생활 파고드는 AI

이렇게 에코 돌풍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구글이 반격에 나섰다. 구글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회의에서 ‘구글 홈’이라는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를 올해 말에 내놓는다고 발표했다. 구글은 이날 공개한 제품 소개 영상에서 한 가족이 이 스피커를 중심으로 바쁜 아침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헤이, 구글”(Hey, Google)이라고 스피커에 말을 걸며 아들 방의 불을 켜 달라고 시키기도 하고, 저녁 식당 예약 시간을 변경해달라는 요청도 한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면서 어려운 내용을 몰래 구글 홈에게 물어본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가 18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연례 개발자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마운틴뷰=AP 연합뉴스
순다 피차이 구글 CEO가 18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열린 구글 연례 개발자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마운틴뷰=AP 연합뉴스
구글이 18일(현지시간) 연례 개발자회의 ‘구글 I/O’에서 공개한 음성인식 스피커 구글 홈. 구글 홈페이지 캡처
구글이 18일(현지시간) 연례 개발자회의 ‘구글 I/O’에서 공개한 음성인식 스피커 구글 홈. 구글 홈페이지 캡처

과연 구글 홈이 아마존 에코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구글에 이어 애플도 아마존 에코 대항마를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스피커 형태의 인공지능 비서 개발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공지능 비서는 모바일 메신저 안으로도 침투 중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이 최근에 발표한 ‘챗봇’은 메신저를 통한 인공지능 고객응대 서비스다. 사람들이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대화 형식으로 쇼핑도 하고 뉴스와 교통상황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신문사인 월스트리트저널, 의류업체 H&M, 꽃배달 회사인 800플라워스 등이 페이스북의 챗봇 기능을 우선 도입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꽃을 보내고 싶어요, 장미꽃이요”(이용자), “이런 꽃다발이 있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챗봇), “1번이 좋겠네요”(이용자), “누구에게 보내실 겁니까?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세요”(챗봇) 같은 대화를 인공지능과 나누면서 물건을 주문할 수 있다.

구글이 18일(현지시간) 연례 개발자회의 '구글 I/O'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기반 모바일 메신저 '알로'의 실행 화면. 알로는 대화 상대방이 말을 걸면 글뿐만 아니라 사진, 동영상까지 인식해 적절한 답변을 추천해 준다. 구글 제공
구글이 18일(현지시간) 연례 개발자회의 '구글 I/O'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기반 모바일 메신저 '알로'의 실행 화면. 알로는 대화 상대방이 말을 걸면 글뿐만 아니라 사진, 동영상까지 인식해 적절한 답변을 추천해 준다. 구글 제공

구글도 개발자회의를 통해 ‘알로’라는 인공지능 모바일 메신저를 내놨다. 이 메신저에는 구글 인공지능 비서가 탑재돼 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우리 근처 한국식당에 가서 점심 먹을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치자. 구글 비서가 끼어 들어서 “근처 한국식당은 1.아리랑 2.무궁화 3.금강산이 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친구와 “아리랑이 맛있겠다. 1시가 어떨까?”, “그래, 그렇게 하자”고 대화하면 구글 비서는 곧 바로 식당을 예약한 뒤 “1시 아리랑으로 예약을 완료했습니다”라고 답한다. 이런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눈치 빠른 인공지능 비서와 음식점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소위 온ㆍ오프라인 연계(O2O) 덕분이다.

이처럼 싫든 좋든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아마존 에코 같은 제품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미국은 일반인들도 거부감 없이 인공지능 비서를 이용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가족끼리 같이 이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존 에코는 이미 500만명 이상이 이용 중일 것이다.

구글은 아예 ‘알파고’를 일상 생활의 비서로 파견할 기세다. 이들 인공지능 비서는 스피커의 모습으로, 스마트폰의 모습으로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필요할 때 끼어들 것이다. 지금까지는 “알렉사”하고 물어봐야 답을 하지만 앞으로는 물어보기도 전에 척척 “아기 기저귀가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미리 주문해 둘까요?”라고 먼저 말을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사생활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온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회사들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는 ‘빅브라더’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둑 고수들의 수를 학습해서 실력을 키운 알파고처럼 수백만명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마존 에코는 갈수록 더 똑똑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대화하는 상대가 진짜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인간 세상에 들어오는 이런 인공지능 컴퓨터와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를 이들이 빼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깊어진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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