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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씨네]똑똑 민희 당찬 태리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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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씨네]똑똑 민희 당찬 태리 '아가씨'

입력
2016.05.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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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아가씨'는 "노출 수위 합의불가"라는 공지를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자연스레 여배우 김민희와 김태리의 동성애 베드신에 이목이 집중됐다. 뚜껑을 열어본 '아가씨'는 동성애를 다뤘다고 말하긴 어렵다. 남녀노소 누구나 열망하는 자유와 사랑에 대한 욕망 속에 베드신이 있을 뿐이다.

오는 6월1일 개봉하는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내용이다. 박찬욱 감독이 7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한국영화로 김민희(히데코), 하정우(백작), 김태리(숙희), 조진웅(이모부 코우즈키), 김해숙(하녀장), 문소리(이모) 등이 출연한다.

■여배우들

박 감독이 7년 전 '박쥐'를 선보였을 무렵, 김민희는 영화 '여배우들'에 나왔다. 패셔니스타로 불렸던 김민희였는데 지금은 충무로 감독이 선호하는 여배우가 됐다. '아가씨'는 그런 김민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작품이다. 그동안의 김민희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화차' '연애의 온도' 등에서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을 연기해왔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일종의 무대 연기도 소화하며 뭐든지 잘하는 배우의 면모를 보여준다. 극중 김민희는 일본어로 실감나게 '구연야설'을 한다. 오직 목소리 하나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야릇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엄청난 일본어 대사를 외우면서 1인다역까지 선보인다. 김민희 말고는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아가씨 역을 흡수했다.

김태리는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당차게 연기했다. 1500대 1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이유를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하정우, 김민희, 조진웅을 상대함에 있어 기에 눌리지 않고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특히 하정우와 은밀한 부위를 놓고 신경전을 벌일 땐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갖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김태리의 묘한 비주얼도 극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짙은 눈썹과 이국적인 눈매로 섬세한 표정 연기를 하는 모습에서 김태리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반전의 3부작

영화는 1, 2, 3부로 구성됐다. 1부와 2부는 같은 장면인데 시점이 다르다. 하녀의 관점, 아가씨의 관점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이야기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감탄이 나온다. 같은 장면을 다른 시점으로 보여주는 것은 박 감독이 가장 잘 사용하는 기법이다. 박 감독은 "나도 몰랐는데 내가 이런 구성을 좋아하는 것 같다. '복수는 나의 것', 'JSA공동경비구역' 등에도 이런 장치가 있었다. 원작소설 '핑거스미스'를 볼 때도 그 점이 참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3부는 시간의 흐름을 담았고, 그 안에서도 반전은 계속된다. 각 캐릭터마다 숨겨져 있던 성격들이 나오면서 캐릭터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모부 역의 조진웅이 본격적으로 활개를 치고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모부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관객들의 탄성과 비명이 새어나온다. '핑거스미스'를 읽은 관객들도 전혀 다른 결말에 흥미를 느낄 것으로 보인다.

■세트의 신세계

류성희 미술감독은 지난 22일(현지시각) 제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술아티스트에게 수여되는 벌칸상을 수상했다. 미술 분야가 받은 것은 10년 여 만에 처음이며, 단독 수상 또한 이례적인 일이다. 영화는 표준렌즈보다 약 두 배 가까이 화각이 넓은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했다. 이에 양옆으로 넓어진 공간을 채우는 것은 미술팀의 몫이었다. 류 미술감독은 예사롭지 않은 감각으로 독보적인 미를 구축했다. 전형적인 1930년대 모습이 아니라, 과도기적 1930년대를 묘사했다. 한국, 일본, 영국 세 가지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섬세한 미장센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세트에 공을 들인 이유는 아가씨를 둘러싼 환경적 요소가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신분 상승을 향한 욕망과 서구에 대한 동경을 지닌 이모부의 취향이 우선적으로 반영됐다. 이에 제작진은 일본 전통 양식과 유럽 양식이 하나로 붙어 있는 특별한 저택을 일본 전역을 뒤져 찾아냈다. 저택 중 가장 상징적 장소인 서재는 일본식 가옥을 기본으로 서양식 도서관, 실내 정원까지 만들어 이질적 요소를 묘하게 조합했다.

이처럼 '아가씨'는 잘 짜인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다. 연출, 연기, 구성, 소품, 세트 등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 없이 잘 맞아떨어졌다. 상업영화로서 대대적인 성과도 거뒀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인도, 싱가포르, 호주, 알제리, 모로코 등 전 세계 175개국과 판권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아가씨'를 보고 현혹될 일은 없을 것이다.

사진=영화 '아가씨'

황지영 기자 hyj@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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