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는 커다랗고 직업은 경찰이다. 무소불위까지 아니어도 어깨에 꽤 힘을 줄 만한 인물이다. 집에서 가장으로서 목소리를 높이고, 여성 목격자에게 윽박지르는 이 남자, 사실은 겁쟁이다. 동료의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선 버럭 화를 내며 공포를 털어내고, 의문에 싸인 사나이를 만나러 가기 전엔 막걸리를 들이킨다. 공포에 포위되고 난 뒤 악다구니를 쓰며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다.
영화 ‘곡성’의 겁쟁이 경찰 종구는 배우 곽도원의 외모와 연기력에 기대어 실체를 얻는다. 덩치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겁에 질려 공포의 수렁 속에 빠져들고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종구는 관객의 감정 이입도를 높인다. 곽도원은 종구이고, 종구는 곽도원이라 할만 하다. 빼어나지 않은 외모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며 충무로에서 입지를 다져가는 곽도원이 빚어낸 인물들을 돌아봤다.
폭력 불사하는 불량 검사(‘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배우 곽도원의 가치를 충무로에 널리 알린 작품이다. 영화의 중심축은 브로커 최익현(최민식)과 건달 최형배(하정우)이나 검사 조범석(곽도원)의 무게감도 묵직하다. 익현이 인맥을 동원해 형배의 불법적인 사업을 도와주며 공생하다 갈등하고 파국을 맞는 과정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곽도원이 연기한 조범석은 형배의 범죄 행각에 맞서는 부산지검 검사다. 악질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검사답게 범석은 거칠다. 구치소에서 죽도로 익현을 구타하거나, 요정 화장실에서 익현의 국부를 발로 차며 ‘군기’를 잡는다. 범죄자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하는 조범석의 담대함은 위압적인 덩치와 단호한 말투로 더 부각된다.
애국심에 사로잡힌 고문 경찰(‘변호인’)
곽도원의 단단한 외모는 ‘변호인’에서도 빛을 발한다. 돈만 밝히던 속물 변호사 송우석(송강호)이 인권 변호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려낸 ‘변호인’에서 곽도원은 비뚤어진 애국심에 사로잡힌 대공 담당 형사 차동영을 연기한다. 6·25전쟁 당시 공산당에게 아버지를 잃은 비극적 개인사까지 품은 차동영은 운동권 학생들 모두를 빨갱이 취급한다. 국가와 정권을 구분하지 못하고 오직 애국심 하나만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위험한 인물인 그는 송우석에 맞서는 악인이면서도 정권에 악용 당하는 희생자다. 머리보다 몸을 앞세우고, 논리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차동영은 곽도원의 우직한 얼굴과 큰 덩치를 통해 형상화된다.
보잘것없는 그래서 안쓰러운 동네 아저씨(‘남자가 사랑할 때’)
내세울 것은 없다. 삶은 비루하고 군내 난다. 영일(곽도원)은 시골이나 다름 없는 퇴락한 소도시를 거닐다 보면 어디서든 마주칠 듯한 인물이다. 영일은 사채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동생에 기대 삶을 영위하면서도 순박함을 간직한 남자다. 자기 집에 얹혀사는 동생과 우격다짐을 나눌 정도로 갈등하면서도 우애를 쉬 버리지 못한다. 무능하고 살갑지도 않은데 외면할 수 없는 인간적인 인물 영일을 곽도원은 텁텁하고도 수수한 모습으로 표현해낸다. 옷이 부풀려 보일 정도로 살진 몸과 후덕한 얼굴이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소박한 남성미를 부각시킨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낸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업자(‘타짜-신의 손’)
근본은 딱히 알 수 없다. 안경 쓴 모습이 언뜻 인텔리 분위기를 풍기고 사람 좋은 듯 호탕하게 웃지만 악질 사채업자이자 저질 타짜다. 타고난 노름꾼 대길(최승현)을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거액을 건 화투판에서 폭력으로 대길을 압박하기도 하고, 돈을 무기로 대길의 연인 미나(신세경)의 삶을 압류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 장동식은 곽도원의 우렁찬 목소리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 연기로 만들어진다. 악역에 더 걸맞은 곽도원의 굳은 얼굴을 단순하게 활용하는 점이 아쉬우나 역설적으로 악역에 적합한 곽도원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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