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참모들 만류에도 확고
순방 출국 전에 거부권 방침
靑, 배경 설명 등 한마디 없어
‘불통의 정치’ 논란 재점화 예고
박근혜 대통령에겐 이번에도 ‘협치’보다는 ‘원칙’이 우선이었다.
박 대통령은 상시 청문회법(개정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놓고 그다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27일 “박 대통령은 국회가 정부를 통제하고 마비시킬 수 있는 법을 살려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확고했다”며 “일부 참모들이 ‘20대 국회와 관계에서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만류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ㆍ프랑스 순방 출국(25일) 전에 거부권 행사 방침이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에 전자결재를 하면서까지 19대 국회에서 서둘러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아간 국회법에 대한 재의결 부담을 덜고 논란을 서둘러 정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마이웨이 국정운영’의 결정판이란 시각이 많다. 여소야대가 된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하면 냉동 정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상시 청문회법의 헌법상 3권분립 침해 여부를 놓고 견해가 엇갈린다는 지적도 박 대통령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국 박 대통령이 4ㆍ13 총선 참패 이후 소통과 협치로 전환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옳다고 믿으면 반대 진영의 비판과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밀어붙여 승부를 보는 것은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을 지난해 국회로 돌려보냈을 때도,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에서 몰아내고 끝내 새누리당 총선 공천을 주지 않았을 때도 그랬다.
27일 국회법 거부로 박 대통령에겐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눈 앞의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이 거듭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국회가 어차피 믿을 수 없는 대상이라면, 국회법 논란을 정면돌파 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인사는 “정부가 국회법을 공포했다고 국회가 노동개혁ㆍ경제살리기 입법에 협조했겠느냐”며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온갖 청문회를 요구하며 청와대와 정부를 흔들겠다는 두 야당의 의도에 넘어갈 순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부권 행사를 최종 결정한 것은 박 대통령인데도, 청와대는 그 배경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아 불통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 관계자가 “20대 국회는 경제와 민생을 챙기고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유체 이탈’ 발언을 언론에 대고 한 것이 청와대에서 나온 설명의 전부다.
청와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차 대전 때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를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방문한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관련, “아시아 국가들이 우려에 빠져들고 있다”고 전하면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를 하지 않았으며, 현재 아프리카를 방문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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