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 답이다’는 여러모로 웃음 나는 책입니다. 저자는 전중환 경희대 교수. 진화심리학을 정립시켰다는 미국 텍사스대 데이비드 버스 박사의 직계 제자입니다. 알다시피 진화심리학은 욕 먹기 딱 좋습니다. 싸움 붙이기엔 단순 이분법이 최고지요. 이 법칙에 따르자면, 진화심리학에서 남자는 남아도는 정자 막 뿌리는 존재이고 여자는 몇 안 되는 소중한 난자 아껴 쓰는 존재입니다. 씨 막 뿌리려는 남자와 밭 아끼려는 여자가 벌이는 한판 게임이 세상사라는 걸, 이론적으로 다룹니다.
이쯤이면 감이 올 겁니다. ‘마초남’ ‘김치녀’ 얘기들이 풍성한 이 땅에, 지난 총선에 어느 당의 표현대로 바짝 정신차리지 않으면 한 순간 훅 갈 수도 있는 얘기일 겁니다. 더구나 과학자란 존재들은 ‘가설적 탐구’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센스’ 없는 말들을 어찌나 쉽게 내뱉는지요. 일 터지고 나면 “존재와 당위를 구분 짓지 않는 자연주의 오류”라거나 “그건 오해”라고 더듬더듬 설명하지만, 앞의 말은 대개 이해불가일 테고 뒤의 말은 구질구질한 변명으로 치부될 뿐이겠지요.
그럼에도 전 교수는 ‘본성이 답이다’라고 제목 지었고 거기다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은 거울 속 나를 꼭 껴안는 인물을 배치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건 남 욕하는 일이고, 제일 어려운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일 겁니다. 괜히 방황하지 말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일단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안아주는 데서 시작하자는 격려이자, 온갖 오해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생각이 없다는 전 교수 스스로의 다짐처럼도 보입니다.
책은 그간 이런저런 언론에 써온 칼럼들 모음입니다. 이미 발표된 칼럼을 모은 책을 리뷰에서 잘 다루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고른 건 단순히 칼럼을 모은 데 그친 것만이 아니라 칼럼 속 주장의 근거 문헌을 밝혀 둬서입니다. ‘모든 게 진화하는데 진화심리학만은 진화하지 않는다’는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아냥에 맞서 그레고리 코크란 등이 지은 ‘1만년의 폭발’(글항아리)을 추천하는 식입니다. 고맙게도 이렇게 추천하는 책들 대부분은 국내 번역본입니다. 우리 현실과 얽힌 얘기들이 풍성하면서도, 진화심리학에 대한 지도까지 제공해주니 입문서로는 이만한 게 없지 않나 싶습니다.
한가지만 더. 씨 뿌리는 존재인 남자는, 여자가 의례적으로 보여준 조그만 호의에도 반색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진화심리학의 설명입니다. ‘먼저 꼬리쳤다’는 말의 오랜 기원쯤 될까요. 이 얘길 풀어나가면서 전 교수는 미국 슈퍼마켓 체인 ‘세이프웨이’의 사례를 듭니다. 여직원들에게 결제할 때 “XXX 고객님, 쇼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웃어주라 한 겁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남자 고객들이 여자 점원들에게 치근덕대기 시작했거든요.
어떻게 됐냐고요. “견디다 못한 몇몇 여직원들이 세이프웨이를 고소했고, 이 정책은 폐기되었다.” 넘쳐나는 도우미 알바, ‘고객만족’ 구호와 ‘감정노동’과 ‘갑질’ 논란 사이에서 이 문장이 어떻게 읽히시나요. 본성과의 화해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우린 동물이되,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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