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라진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시골에서도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의 가출 소식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전성민! 그의 이름이다. 그는 현재 목회자가 되어 아프리카 수단에서 7년째 빈민 구호와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소위 ‘잘 나가는 직장인’이던 그가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네팔로 떠난다며 소식을 전해왔다. 또 한 번의 돌출행동이었다.
그의 돌출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 년 후 네팔에서 돌아온 그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며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막 출판사를 시작했던 내게 꽤 괜찮은 아이템을 하나 제시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책을 쓸 수 없을 것 같으니, 네팔 여행 중 봉사활동을 하며 만났던 사람과 공동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로서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그렇게 기획됐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웬걸.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절반도 진행되지 않았다. 더욱이 선배는 신학교 3학년을 마친 후 아프리카로 떠나버렸다. 그것도 한 번 연락하려면 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수단으로. 모든 것이 공중으로 붕 뜬 느낌이었다. 아니, 그 정도면 그쯤에서 책 출간을 포기해야 했다. “책도 출판사와 인연이 있다”는 출판계에 떠도는 말이 맞는 듯했다. 그런 점에서 나와 그 책은 인연이 아닌 듯했다.
1년여의 시간이 또 흘렀다. 어느 날, 선배로부터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원고가 다 마무리되었다는 말과 함께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출간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 멍했다. 이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1년여의 출간 일정을 이미 짜놓은 뒤였기 때문이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다른 책의 출간 일정 사이에 끼워 넣던지(대부분 이렇게 출간되는 책은 출판사에서도 큰 욕심 없이 출간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다.), 출간 일정을 다시 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책을 포기하느냐, 다른 책을 포기하느냐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는 고심 끝에 후자를 택했다. 아니, 지금까지 선배가 보여준 삶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선배는 누구보다도 삶을 진지하게 바라봤으며, 자신을 성찰할 줄 알았다. 선배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 가출을 한 이유 역시 그와 연관이 깊다. 자신은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부모는 취업을 권유했다고 한다. 농사 짓는 집의 뻔한 살림에, 이미 형과 누나가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단식도 해보고, 반항도 해봤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부모에게 그것이 통할 리 없었다.
언젠가 선배에게 농담 삼아 출간 일정도 지키지 않는 나쁜(?) 저자라며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러자 며칠 후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 넘치는 재치에 웃을 수밖에.
임채성 루이앤휴잇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