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공식 지명에 필요한 전체 대의원의 과반수인 ‘매직넘버’(1,237명)를 달성하면서 대권 도전 1차 관문을 공식 통과했다. 트럼프는 매직넘버 달성을 자축하는 자리에서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탄소를 줄이자는 파리기후협정의 취소를 선언하며 에너지전략에서도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했다. 본선에서도 ‘변칙전술’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26일 AP통신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 24일 워싱턴주(대의원 44명)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매직넘버보다 한 명 많은 1,238명의 대의원을 확보했다. 이는 지역별 경선 결과와 관계없이 트럼프를 지지하기로 결정한 슈퍼 대의원 88명을 포함한 수치다. 다음달 7일 캘리포니아와 몬태나, 뉴저지, 뉴멕시코, 사우스다코타 등 5개 주에서 303명 대의원을 놓고 경선이 치러지지만, 트럼프의 매직넘버 달성으로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게 됐다.
미 언론들은 부동산 재벌로 정치 문외한인 트럼프가 공화당 주류의 다른 15명 경쟁자를 잇따라 따돌리는 과정에서 미국의 변화한 민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강간범’으로 비하하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쌓겠다고 발언하는 등 인종ㆍ성차별적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켰는데도 경선 통과에 성공한 것은 기성 제도권에 대한 미국인, 특히 중산층 이하 백인들의 뿌리깊은 분노의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이제 트럼프의 목표는 본선이다. 무례한 막말과 허풍으로 경선을 통과한 트럼프는 본선 경쟁에서도 변칙적 선거운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다소의 비난을 듣더라도 기후변화, 세금, 재정건전성, 외교ㆍ안보 등에서 상충되는 장밋빛 공약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실제 이날 매직넘버 달성 직후 노스다코타주 비스마르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기반한 에너지 전략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파리기후협정을 취소할 것”이라면서 “유엔 녹색기후기금(GCF)에 우리 세금을 내는 것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이날 들고 나온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과의 기부금 모금을 위한 ‘맞짱 토론’도 민주당 본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허를 찌르는 행보다. 트럼프는 전날 밤 ABC방송 토크쇼 ‘지미 키멀 라이브’에 출연해 “자선을 목적으로 일정한 기부금을 거둘 수 있다면 샌더스와 토론을 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데 이어, 26일 오후 ‘매직넘버’달성에 맞춰 이뤄진 기자회견에서는 “나는 버니(샌더스 의원의 애칭)와 토론하고 싶다. 그는 맞상대가 될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토론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여성 보건문제나 자선을 목적으로 1,000만 달러(한화 118억원) 또는 1,500만 달러의 기부금을 거둘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선에서 전당대회를 치러 공화ㆍ민주 양당의 최종 후보가 정해지기 전에 두 당의 주요 후보가 토론에 나선 전례는 없다. 또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전무한 만큼, 트럼프의 제안은 다분히 클린턴 진영을 흔들려는 포석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샌더스 선거캠프 본부장인 제프 위버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토론이 이뤄지면 전국 유권자들에게 도움이 되며 대선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토론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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