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철학 가이드북
제임스 M 러셀 지음ㆍ김우영 옮김
휴머니스트 발행ㆍ360쪽ㆍ1만7,000원
이제껏 철학을 가볍게 다루려고 애쓴 책들은 많았다. “내가 이 정도 교양은 갖춘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얕지만 넓은 정보를 담고 있는 책들 말이다. 문어체보다는 대화체로, 글보다는 만화로 구성된 책은 독자들이 철학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다. 신간 ‘곁에 두고 읽는 철학 가이드북’ 역시 굳이 따지자면 그런 책들 중 하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던 제임스 M 러셀은 “너무 가볍다는 비판을 각오”하고 책을 썼다. 저자는 67개의 새로운 철학 고전 목록을 만들고, 각각을 1,000자 내외의 짧은 글로 간략하게 소개한다. 제목대로 ‘가이드북’이다. 칸트, 플라톤 등 대가들의 저작부터 소설, 동화, 정치적 선전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철학 고전 목록에 넣었다. ‘스피드 리드(Speed Read)’라는 코너에는 원서 내용을 발췌해 독자가 ‘읽지 않고도 읽은 듯한’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기꺼이 “책꽂이 장식용” 이 되겠다는 이 책은 지나치리만치 가벼워 오히려 기존의 책들과 구별된다. ‘철학’이라는 이름값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서 과감히 탈피한 책은 독자가 철학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을 넘어 지적인 대화를 위한 수단에 머물렀던 철학의 본질을 일깨운다. 독자가 철학의 실마리들을 접하고 “(그들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임스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을 책에 실으며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이 굉장히 폭넓은 주제에 관해 글을 썼”다며 ‘잡동사니’같다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제임스는 러셀이 “각각의 문제를 단순히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쉬운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해답에 독자가 설령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그것 역시 “철학 책 읽기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말한다. 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대화와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 철학이라고 제임스는 덧붙인다.
프랑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도 67선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책은 “발기 부전, 성적 불만, 실연, 꼭 필요한 돈이 없는 서러움 같은 다양한 화젯거리를 다룬다는 면에서 전통적인 철학보다는 자기계발서에 가깝”지만 “자신이 어떤 식으로 철학자들의 사상을 인생에 적용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는 면에서 철학을 읽는 모범적인 예를 제시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제임스가 그간 철학서가 가졌던 무게를 완전히 제거하고 ‘안내서’ 제작을 기꺼이 도맡은 까닭은 ‘우리가 알고 있던 철학이 사실은 철학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사상가들이 사용한 현학적 용어를 그대로 외우고 사고의 흐름을 그대로 좇는 방식보다 모든 사물에서 철학적 영감을 얻고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 적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책이 제시하는 진짜 철학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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