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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학생 위해 학교에 샤워실 설치, 노동인권교육 출발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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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학생 위해 학교에 샤워실 설치, 노동인권교육 출발점으로”

입력
2016.05.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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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학생 존엄 보호

생계 위한 아르바이트 느는데

‘학생 본분 안 한다’ 자존감 낮춰

공적으로 가시화하고 환대해야

인권 감수성 키우는 교육

현재는 노동 외면 진로교육 뿐

현장 사례 실질적으로 가르쳐야

노동착취 등 문제 해결 역량 갖춰

하인호 인천비즈니스고 교사가 자신이 소속된 취업관리부 교무실 앞에서 노동인권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교무실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고용주의 부당행위를 신고할 수 있는 ‘안심알바신고센터’ 기능을 겸하고 있는데, 하 교사가 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하인호 인천비즈니스고 교사가 자신이 소속된 취업관리부 교무실 앞에서 노동인권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교무실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고용주의 부당행위를 신고할 수 있는 ‘안심알바신고센터’ 기능을 겸하고 있는데, 하 교사가 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이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 짐이 되는 학생들이 있다. 생계를 위해 노동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처지에 따라 때로는 밤늦게까지 노동을 한다. 다음 날 학교에 와서 고단한 몸으로 수업을 듣다가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보는 학교의 시선은 곱지 않다. 처지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고 질타한다. 게다가 학교 교육 어디에서도 ‘노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하는 학생들은 있지만 노동에 대한 교육은 아직 학교에 없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는 하인호 인천비즈니스고 교사를 만나 청소년 노동과 노동인권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 일하는 학생 위한 샤워실을

“현실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가정이 급격히 해체되면서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아이들까지 나서지 않으면 가정경제가 유지되지 않을 상황까지 와버린 거다. 생계를 유지하려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부권의 택배 분류 같은 경우는 새벽 4시까지 한다. 그런데도 교사를 포함한 사회의 시선은 이전과 다름이 없다. 공부는 때가 있는 것인데 왜 학습에 지장 받게끔 일을 하느냐는 거다. 학생들도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탐탁지 않다는 걸 고스란히 느낀다. 그러니 학교에 있으면 ‘본분을 다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존감이 사라진다. 이들을 제대로 교육을 하려면 학교 안에 샤워실도 만들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노동을 마치고 온 학생들이 학교가 자신의 존엄을 지켜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그게 교육의 시작이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놀랐던 말이다. ‘냄새’는 혐오와 연관된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방법이 그들을 씻지도 않고 ‘냄새나는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다. 그래서 샤워는 단지 몸을 청결히 하는 것을 넘어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직결된다. 학교가 노동하고 돌아온 학생들이 몸을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단지 ‘복지’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자신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게 ‘인권’ 교육의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는 노동하는 학생들을 환대하고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들의 삶과 노동, 그리고 마음에 대한 배려가 있는지를 가늠하는 구체적이며 상징적인 곳이 바로 이들을 위한 ‘샤워실’이라는 것이다.

열악한 청소년 노동 현실에 관심 가져야

“다른 나라의 경우는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내가 학교에 오는 길, 내가 입고 있는 옷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어떤 노동이 발생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러면서 노동자가 가질 수 있는 권리가 뭔가를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고등학교 단계쯤 오면 노사협상을 다루면서 노동조합 결성이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그들이 파업을 할 때 그에 따른 어려움을 내가 감수해줘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전무하다시피하고, 왜곡된 언론을 통해서 정당한 파업이라도 불법으로 여기게 만든다. 노동 하면 뭔가 나하고는 거리가 있고 기피하고 싶은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부모들조차도 ‘권리’ ‘노동’ 어쩌고 하는 교육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직장에 취업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가운데 권리 교육을 한다고 하면 ‘취업하기 힘들 텐데’ 하는 반응을 보이는 거다. 우리 학교는 그렇지 않지만, 지금도 일부 학교 관리자들은 그런 걸 강조하면 취업 자리 안 들어오는 거 아니냐고 걱정한다. 쉽게 말해 나 같은 사람이 열심히 활동하면 학교에 피해가 된다는 거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노동인권을 얘기하고 교육한다는 게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일’은 주로 직업과 진로교육의 일환으로 다뤄진다. 일을 하는 것이 노동이며 노동자가 되는 것이라는 점은 종종 외면되고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준비하는 ‘자아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다뤄진다. 그러다보니 일과 직업의 노동으로서의 측면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로 노동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고용계약서 한 장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상태에서 노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더구나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 ‘성과’의 압박을 받는 특성화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권리의식이 높아지면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을까봐 의도적으로 권리교육을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취업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그 다음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는 셈이다. 오히려 학생들이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오면 정신력이 부족하다거나 후배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질책한다.

그러니 청소년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어디를 통해 어떻게 호소하며 해결을 모색해야하는지를 모른다. 특히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엔 말로는 청소년들을 노동 착취로부터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청소년이고 학생이기 때문에 더 쉽게 착취 당한다.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폭언과 폭행, 성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명칭에서도 알바‘생’, 현장실습‘생’ 등 노동보다는 ‘학생’이라는 데 더 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청소년 노동이 점점 더 ‘밑바닥 노동’이 되고 있다. 청소년 노동을 보호한다지만 지금의 현실은 법과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봐야한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밖에도 많은 만큼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노동인권교육도 필요하다. 지자체도 역할을 해야 한다. 광주시의 경우 노동인권센터를 곧 개설할 텐데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지역 청소년들의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그들을 위한 쉼터와 도서관, 노동인권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센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청소년노동복지센터’가 지역에 필요하다.”

권리의식ㆍ인권 감수성 깨우는 노동교육을

그는 학교 안에서 ‘안심알바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알바 노동을 하는 학생들이 고충을 토로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을 통해 실질적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노동하는 청소년’들을 가시화하는 일이다. 센터의 존재를 통해 노동하는 학생들이 학교가 자기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의 말을 공적으로 들어주는 공간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을 존재감이 있는 인간으로 여기며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노동하는 청소년들의 권리와 존엄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이들의 존재가 공적으로 가시화돼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학교와 지역 청소년노동센터가 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권이 아니라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히 법에 있는 내용이나 법의 변천사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감수성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법 위주 교육 하에서는 잘못된 것은 알 테지만 해결책이 막막하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은 또 다른 거니까. 그러면서 좌절감이 커지고 자꾸 사안을 기피하게 되고 채용 단계에서부터 존엄을 포기해야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 것이 사회적으로 바뀌고 개선되려면 학교에서부터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 교육은 지금처럼 가르치는 방식, 지식이나 법 위주 교육으로는 안 된다. 노동인권교육을 통해서 단순히 권리 부문뿐 아니라 노동의 역사, 젠더 문제라든가 노동자가 처한 현실이 무엇인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길러줘야 한다. 이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이 ‘방법’이다. 상황극도 한다. 일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을 주고서 거기서 문제가 뭔지를 모둠별 단막극 형식으로 발표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모둠 안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로 나눠서 발표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상황을 같이 파악하고 해결책도 같이 모색해보는 거다. 모둠이 다섯 개라면 다섯 개의 사례를 같이 보면서 다양한 해결방법을 간접 경험하는 거다. 나중에 현장에 가서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자기가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고민하게 되는 거다.”

초창기에 노동인권교육은 정부와 보수적인 학교 관리자들에게 탄압을 많이 받았다. 노동이라는 말만 해도 불온한데 거기에 청소년과 인권도 붙여놨으니 오죽했겠냐고 그는 웃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노동인권을 다루는 사람들의 노력과 함께 사회의 변화는 더 이상 이것을 외면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만큼 노동하는 청소년들의 숫자도 늘어났고 이들에 대한 착취가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여기에 더해 노동인권교육이 취업률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취업 도중 돌아오는 학생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몇몇 관리자들도 경험하고 있다. 취업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가기 때문에 현장에서 위화감을 덜 느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추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학교 밖에서는 물리적이든 아니든 청소년노동복지센터가 만들어지고 학교 안에서는 독일이나 덴마크처럼 노동인권 관련 교육을 교과과정화해 초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교육을 통해서만 법조문에 머무르는 권리와 존엄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문화학자

●하인호 인천비즈니스고 교사는

1954년 전북 무주 출생. 전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교단에 나와 상업 과목을 가르쳐왔다. 1992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1994년 복직했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학교 직업교육의 내실을 높이는 방안을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2005년 교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과 함께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를 결성해 노동인권교육 제도화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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