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묻지마살인 사건으로 우리 모두가 피해자의 입장에 서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5월17일 서울 강남역 부근의 한 주점 화장실에서 벌어진, 20대 여성에 대한 묻지마 살인사건이 국민적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 조사에서 살인자는 “항상 여성들에게 무시당해 왔다”는 것을 범행동기로 밝혔다고 한다. 그 때문에 ‘여성혐오’가 묻지마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비판과 분노가 인터넷에서 더욱 거세지는 것이다.
한 블로거는 “한국은 이제 남자란 이유만으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원종우씨(과학과사람들 대표)는 ‘가해자가 아니라도 피해자 입장에 서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통해 “어떤 사람이 세상이 미워 살인을 하는데 그 핑계와 대상을 여성으로 규정짓게 되는 데는 그만한 사회적 이유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그것은 분명 인종차별적인, 성차별적인 ‘여성혐오’라는 것이다.
그 글을 읽고 필자는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적 이유를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사건도 단순히 정신분열자의 우발적 범행으로 치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울분 때문이다.
차제에 우리 사회는 여성혐오를 불러올 수 있는 사회적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는 작업이 시급하다. 과거 한국인들의 ‘윤리기준’으로 제시됐던 삼강오륜에 대한 문제점도 이젠 도마 위에 올려놓고, 버릴 부분은 과감히 잘라내 쓰레기통에 처넣어야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과연 필자만의 생각일까.
공맹사상에서 유래된 조선시대의 윤리교과서 ‘삼강오륜행실도’를 보자. 그곳 삼강(三綱)에는 분명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 부위부강(夫爲婦綱)을 적고 있다. 오륜(五倫)에도 남편과 아내는 분별있게 각자 자기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부부유별(夫婦有別)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보니 그것이 여성을 옭아매려는 지독한 함정이었다. ‘공자님이 정한 약관’이라는 감언이설로 여성들을 속인 것이다. 남녀가 서로 대등한 자격이라고 속여 여성들에게 ‘삼강오륜 계약서’에 도장찍게 한 것이다.
여성차별은 거기서부터 잉태하기 시작했다. 툭하면 삼강오륜의 법도에 어긋났다는 지적질로 이어졌다.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이라 말하기조차 힘들었다. 삼강의 부위부강과 오륜의 부부유별은 결국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한 사기약관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구체적인 여성차별 조항도 등장했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불순부모(不順父母)의 죄, 아들을 못 낳으면 무자(無子)의 죄, 얼굴을 들고 외간남자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음탕의 부정(不貞)죄가 성립될 수 있었다.
또한 질투함(嫉妬), 나쁜 병이 있음(惡疾), 말이 많음(多言), 도둑질함(竊盜)도 칠거지악의 징계 법률에 들어갔는데, 이런 경우 삼강오륜의 법도에 어긋난다하여 이혼의 사유가 됐다. 일부 구제방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편은 언제든지 꼬투리를 잡아 아내를 소박(疏薄)해 친정으로 쫓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현재는 과거와 달리 여성에 대한 배려가 크게 늘어났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의 현대 사회와 문화에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그릇된 관념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되새겨보아야 할 때다.
여성들이 약한 것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일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대비책을 정치권이 강구했으면 한다. 홍익인간을 처음 제시했던 분이 바로 웅녀(熊女)였기 때문이다.
▶필자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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