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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따르라” 당론에 구속… 소신파 설 자리 잃고 정쟁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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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따르라” 당론에 구속… 소신파 설 자리 잃고 정쟁 격화

입력
2016.05.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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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지도부 전부 아니면 전무式

대화 조정 대신 되레 갈등 조장

여야 타협안조차 뒤집기 다반사

#1. 2014년 12월 2일 여야가 2002년 이후 12년 만에 법정시한을 지켜 예산안을 처리해 국민적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여당이 정부 요청을 받아 당론으로 처리를 추진했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부결된 탓이었다. 야당의 반대는 예견했지만, 여당 의원 35명의 이탈표가 결정적이었다. 의원총회에서 표 단속에 나섰음에도 본회의에서 반대토론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는 여당 의원이 적지 않았다.

#2. 1999년 9월 28일 국회 본회의장. 동티모르 전투병 파견 결의안 표결에 앞서 당론으로 반대 입장을 확정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퇴장하는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이미경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동티모르의 인권유린 실태를 소개하고, “지난 24년간 동티모르에서의 학살 만행이 80년 광주와 너무 흡사하다”며 전투병 파견 찬성을 주장했다. 당론에 배치됐다는 이유로 이 의원은 당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다.

국회의원들이 당론정치의 굴레에 갇혀 정치적 소신을 꺾은 사례는 우리 정치사에 셀 수없이 많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들조차 강제 당론 폐지를 정치개혁 과제로 꼽고 있지만 당론과 배치되는 소신 투표를 한 의원들을 바라보는 당내 시선은 여전히 차가운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정당 문화가 국익과 양심에 기초한 자율적 의정활동보다 당론과의 합치 여부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쟁점법안을 두고 매년 되풀이되는 여야의 극한 대립도 결국은 당론 정치에 매몰된 우리 정치의 자화상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풍토 개선이 필요하다.

상임위원장ㆍ여야 간사도 당론에 구속

17, 18대 국회에선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쟁점법안을 ‘당론’이란 이유로 야당과의 협의 없이 강행처리를 주도했고, 야당은 이를 막기 위해 몸싸움과 의사일정 보이콧을 불사한 경우가 많았다. 여야가 뒤바뀌어도 변치 않은 관행이었다. 그래서 19대 국회에서 도입한 것이 국회선진화법이다. 국회선진화법은 폭력 국회를 근절했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를 받지만 법안 취지대로 타협 중심의 의회 문화를 정착시켰냐고 묻는다면 답변은 부정적이다.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선진화법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한계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발제자로 나선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이 좋은 취지를 가졌다고 해도 이를 운영하는 의원들의 협조 없이는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서 “각 정당이 당론 처리에 대한 강박이 심하고, 상임위원장과 간사, 소위원장처럼 국회 직을 가진 의원들도 당론에 구속되면서 상임위가 작동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국회법 제114조 2항이 여전히 유명무실한 셈이다.

당론보다 소신 내세우면 ‘야합’ 낙인

의원들이 소신을 내세워 당론과 배치되는 주장을 할 경우 당 지도부와 지지층으로부터 ‘사쿠라’(상대당과 야합하는 정치인)로 낙인 찍는 문화도 문제다. 이런 풍토가 자리잡으면 차기 총선 공천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소신파 의원들의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각 당은 원내정당화와 강제 당론 폐지를 외치지만, 여야 원내대표의 협상안이 당 지도부나 강경파의 비판에 밀려 협상안을 뒤집히는 사례가 빈번하다. 2004년 국가보안법,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 2014년 세월호 특별법 협상 등이 대표적이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정치학)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은 외국에 비해 역사가 짧은 데다 정당의 생성ㆍ소멸이 대선주자 등 지도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지도부가 공천 등 의원들의 생사 여탈권을 쥔 구조에선 의원들이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대선 경쟁이 여야 대결을 격화시켜 원내지도부와 의원들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것이다.

정치적 양극화로 국회가 갈등 조장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국회는 오히려 갈등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국익보다는 정략적인 프레임을 내세워 상대당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관행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논란’이다.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담에서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이에 여야가 이듬해 7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대화록 전문 열람을 의결했으나, 정작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사초(史草) 실종’ 논란으로 불똥이 튀었다. 민생과 별개인 사안을 두고 1년 가까이 소모적 정쟁만 벌인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전문 공개를 강제 당론으로 정해 표결을 밀어붙였고, 민주당은 반대표를 던진 일부 의원들에게 서면 경고장을 발송했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조해진 무소속 의원은 “상대 당의 입장과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 환경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의원들이 지지층의 의견을 대변하면서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해야 하지만, 각 당의 정치 엘리트들이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식의 태도로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말했다. 여야가 자신들이 도출한 타협안을 지지층에게 설득시키려는 노력보다 선거에서 표를 주는 지지층의 요구만 추종하면서 의회 권위를 스스로 추락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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