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인지도와 여권 인물난 결합
전무한 정치 경험 아직 득이지만
맹수들에게 ‘기름장어’가 통할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내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는 25일 대선 출마 여부와 관련, “내년 1월이면 한국사람이 된다”며 “한국 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가서 고민해 결심하겠다”고 말했다. 오랜 외교관 생활로 몸에 밴 NCND(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음)와 거리가 먼, 사실상의 출마 선언이다.
그는 일단 말문이 열리자 말을 아끼지 않았다. “남북 분단도 큰 문제인데 내부에서 여러 가지 분열된 모습을 보여 창피할 때가 많다”며 “이건 정치가 아니라 정쟁”이라고 했다. “남북통일은 당장 기대하기 어려우나 국가 통합은 정치 지도자들의 뜻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며 “누군가 대통합 선언을 하고 나와 솔선수범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국가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도 했다. “남북간 대화 채널을 유지해 온 것은 제가 유일하다”고 내세우기도 했다.
여야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새누리당, 특히 친박계와 충청 출신 의원들은 희색만면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시큰둥해하면서도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노무현 정부의 작품이고, 두 차례의 야당 집권이 충청민심 장악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심사도 복잡하다.
반 총장이 조기에 출마 뜻을 밝혀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한 것은 다행이다. 정국과 국민정서 안정에 도움이 될 만하다. 여당이 아직 4ㆍ13 총선 참패의 뒷정리조차 어려울 정도로 동요하고 있는 것도 결국 내년 대선 기대주가 없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내년 대선의 상수(常數)로 굳어졌다는 것과 그가 대통령 감인가는 다른 문제다. 그는 대개의 대선 주자와 달리 정치 경력이 전무하다. ‘반기문 대망론’은 높은 인지도가 핵심이다.
충북 음성의 산골 소년이 2006년 사무총장이 되었다. 유엔은 북한의 남침에서 나라를 구하고,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게 도와준 ‘키다리 아저씨 모임’이었다. 한국인이 그 수장이 됐으니 국민적 감동이다. 반 총장은 교과서의 ‘세계 속의 한국인, 한국 속의 세계인’에 박지성 김연아와 함께 사진과 이름이 올랐다. 스타이니 좋은 얘기는 많아도 나쁜 얘기는 없다. 전무한 정치경력 덕분에 오점을 남길 기회도 없었다.
정치 밖의 영역에서 쌓은 명성에 근거한 대망론은 흔히 물거품으로 끝났다. 고건ㆍ정운찬ㆍ안철수 대망론이 모두 그랬다. 정치 경력이 부여하는 권력의지나 고난극복 의지가 의심스러웠다. 안 공동대표는 국회의원 재선과 더민주 탈당을 통해 비로소 정치적으로 거듭났다. 여당의 손짓에 응했다는 점에서 반 총장은 일단 권력의지를 보인 셈이지만, 험난한 대선 행로와 검증 난관을 견뎌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국제법상 국가원수와 동격인 유엔 사무총장 10년의 경력을 정치경력으로 여길지 모른다. 반 총장도 그런 입장이지만, 유엔에는 국민이 없다. 외무장관을 포함한 그의 경력은 외교 한 길이다. 쿠르트 발트하임은 유엔 사무총장 출신으로 유일하게 대통령을 지냈지만, 전문분야인‘외교’에 권한이 한정된 영세중립국 오스트리아에서였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비롯한 내정이 우선이다.
맷집도 아직 미확인 상태다. 본격적 검증 절차는 ‘기름장어’라는 별명처럼 교묘한 언행으로 대응할 수 없다. 현실정치는 맹수가 우글거리는 밀림이다. 야당의 맹수들은 벌써 어슬렁거린다. 여당에서도 언제 어떤 맹수가 나타날지 모른다. 그 밀림에서도 ‘기름장어’가 통할까.
유엔이 46년 1월24일의 1차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 11(?)호가 회원국에 유엔 사무총장 퇴임 직후 어떤 정부직도 주지 말 것과 사무총장 자신도 그런 직책 수락을 삼가라고 권고한 사실도 가볍지 않은 정치ㆍ도의적 부담이다. 발트하임은 물론이고, 페루 대선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패배한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의 출마도 각각 총장 임기 종료 5ㆍ4년 뒤였다.
‘반기문 대망론’은 아직 많이 비어있다. 그것을 어떻게 채울지는 이제 그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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