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행위는 처벌받지 않는다. 국회나 정부의 활동은 고도의 정치성에서 비롯된 행위기 때문에 사법심사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통치행위가 적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르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정부가 실정을 하더라도 처벌할 방법이 없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명박정부 자원외교의 실패가 대표적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이명박정부 시절, 해외자원 자주개발률 상향 방침에 따라 해외 유관기업 매수에 나섰다가 큰 실패를 봤다. 부실기업으로 평가받던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의 자회사를 1조7,000억원에 인수한 것도 모자라 경영에 2조원 이상을 투입했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5년 만에 인수가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00억원에 재매각했다. 하베스트사 매입 당시에도 시장에서는 부도 임박 소식이 파다했다. 그런데도 한국석유공사가 제대로 된 검토나 협상 없이 인수를 결정한 건 어떤 이유였을까. 정부가 무리하게 해외자원개발 성과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기간 석유공사의 부채비율은 70%대에서 200%까지 뛰었고, 그 여파에다 경영 부진까지 이어지면서 현재는 400%대로 뛰어올랐다. 석유공사뿐만이 아니다. 자원외교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부채비율이 200%대에서 현재는 6,900%대로 폭증했고, 한국가스공사 역시 400%대에 육박한 적이 있다.
부실 행진이 이어지자 에너지 공기업들은 ‘공기업 경영 효율화’라는 정부 요구에 맞춰 인력감축 카드를 꺼내 들었다. 행정관료들의 실정과 경영진의 배임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묻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한술 더 떠 사실상 민영화 수순으로 볼 수 있는 에너지공기업 지배구조 개편까지 검토 중이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를 통합하고, 광물공사는 민영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반면에 에너지 공기업 부실화를 초래한 정부관계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통치행위로 보호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당시 정책결정권자 중 어느 누구도 구속되거나 처벌을 받은 바가 없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사장만 배임죄로 고발당해 재판정에 섰을 뿐인데, 이마저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며 풀려났다. 국민은 허탈해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부실경영의 책임과는 별개로 위험 수위에 올라선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회생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민영화가 과연 답일까에 대해선 의문이다. 시장조차도 반응이 싸늘하다. 부실자산을 다시 헐값에 넘길 우려가 높은 데다가 아직 민간의 역량이 미흡해 부작용만 불거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부실기업을 통합하면 부실만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에너지 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단기적으로는 손익이 개선되는 듯한 착시가 있을 수 있지만, 부실을 감추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는 자원수급에 악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더욱이 에너지는 공공재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에너지 민영화는 정부가 용역보고서 몇 개 검토한 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칫하면 해외자원외교보다 더 처참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당연히 긴 호흡을 가지고 심층적으로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 우린 견제 받지 않은 통치행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제공자가 결과에 대해서 책임은 지지 않고, 해결책이라며 더 큰 변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걸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보기도 어렵다. 성과주의에 급급해 현 정부 임기 내에 구조조정을 마치려고 한다면 이는 정책의 오류다. 아니 통치행위의 실패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시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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