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하며 마침내 이빨을 드러냈다.
25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전날 미국과 중국 법원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한 특허침해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화웨이는 미 캘리포니아북부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삼성전자가 자사 보유 4세대(4G) 이동통신 관련 특허 11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현금 배상을 요구했다. 기지국이 모바일 기기에 보내는 데이터 가운데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제거, 속도와 효율성을 높여주는 전송 기술 특허 등이 포함됐다. 소장의 절반 정도는 화웨이가 영업 기밀 등을 이유로 검게 가려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삼성전자 스마트폰 등 제품의 판매 금지는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측은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맞소송 등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ICT 기업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예고 없이 도발한 진의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언젠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 적잖다. 중국 ICT 업체들은 특허 신청 건수와 연구개발(R&D) 투자에서 이미 미국 기업들과 함께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세계 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4년 3,442건, 지난해 3,898건의 특허를 신청, 전 세계 기업 가운데 2년 연속 특허신청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화웨이가 이번 공방을 통해 자사의 기술력이 삼성전자에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장 공략에 유독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화웨이는 1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순위에서 삼성전자(23.7%)와 애플(15.4%)에 이어 점유율 8.5%로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불과 2%의 점유율로 8위에 그쳤다. 선진 시장에서는 브랜드 이미지가 휴대폰 구입 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라는 점에서 이번 소송은 화웨이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게 업계 해석이다.
이번 공방은 삼성전자와 애플 간 소송처럼 끝장승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는 소송 제기 사실을 밝힌 성명서에서 “화웨이는 이동통신 네트워크 관련 표준 필수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 조건으로 공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화웨이의 속내는 삼성전자 제품 판매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특허 공유(크로스 라이선스)를 맺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크로스 라이선스란 서로 상대방 특허를 유상 또는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합의를 뜻한다. 애플의 경우 이미 화웨이와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고 연간 수억 달러 규모의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화웨이는 애플에 특허 769건을, 애플은 화웨이에 특허 98건을 사용토록 서로 허용했다.
이번 소송은 그 동안 주로 특허 소송을 당하는 입장에 놓였던 중국 기업이 오히려 소송을 낼 정도로 기술력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상징성이 크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결국 우리 기업들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그 동안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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