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100% 국가책임” 공약에
국민의당도 “정부 부담 높여야”
정부 ‘국고 추가 지원 불가’ 입장
여소야대 국회선 변화 불가피
예산 편성 최종책임자 일원화하고
재원 마련 증세 논의 등 협치 필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파행 문제는 20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강원, 경기, 광주, 전북 4개 시도교육청은 아직까지도 올해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언제라도 '보육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이명박 정부가 도입했던 만 3~5세 무상보육 정책을 이어받아 ‘0~5세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누리과정 사업에 지원되는 예산의 재원 조달 책임을 두고 중앙 정부와 각 시도 교육감들이 갈등을 벌이면서 무상보육 정책은 좌초됐다.
그동안 정부와 각 시도 교육감들이 수 차례 협상 테이블에 앉긴 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이미 누리과정 예산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을, 교육감들은 “교부금 비율을 높이지 않고 재원이 부족하다”는 반박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책임지고 누리과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약을 내건 야당이 4월 총선에서 승리해, 여소야대가 되면서 정부도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 교육청의 몫”이라고만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소야대 국회…정부 ‘내년부터는 해결책 찾겠다’
정부 여당은 표면적으로는 국고 추가 지원 없이 교육감들이 누리 예산을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 교육청이 의무적으로 편성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19대 회기말 발의됐다 폐기된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법을 재발의하겠다는 입장이다. 21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책위의장과 함께 연 제1차 여야정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예산을 편성한 교육청과 안 한) 교육청 사이 형평성의 문제도 있고 원칙의 문제도 있어 정부 입장을 바꿀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의 뜻대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야당들이 모두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공약으로 ‘100% 국가책임 보육 실천’을 내걸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보육예산을 전액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 역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비율을 현재 20.27%보다 높여 정부 부담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의식한 듯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21일 “야당 의장들의 의견을 반영해 장기적인 정부 해결 방안을 강구해 다음 회의 때까지 가져오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야당을 설득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양당 구도에서 벗어나 3당 체제가 된 20대 국회는 정당들이 정책적인 협상을 할 수 있는 폭이 상대적으로 넓어졌다”며 “누리과정 특별위원회를 꾸려 사회적 합의를 통한 법령 정비, 재원 조달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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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통합 위해 법령 정비해야
전문가들은 우선 누리과정 예산부담의 주체를 명확히 할 수 있도록 관련 법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교부금을 ‘교육기관(유치원 및 초중고) 및 교육행정기관을 설치 경영함에 필요한 재원’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시도교육청들은 어린이집은 ‘교육기관’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교부금이 아닌 중앙정부가 국비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영유아보육법(어린이집)과 유아교육법(유치원)에 ‘유아교육에 드는 비용은 국가 및 지자체가 부담하거나 보조한다’고 돼있어 시도교육청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예산을 모두 내야 한다고 반박한다. 누리과정 재원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법적으로 모호한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현행법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복지부 소관으로, 유치원은 교육청 소관으로 돼 있어 책임 공방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며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대한 최종 책임자를 일원화하는 법령 정비가 20대 국회에서 이뤄져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누리과정 소관 부처를 분명히 한 뒤 국가 사무를 지방정부가 대행하게 될 경우 그 비용 전액을 국가가 보장하도록 하는 것을 법령에 명시해야 된다”며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비용을 전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국세의 20.27%인 현행 교부율을 누리과정 추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25.27%로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과거 중학교 의무교육, 방과후 교육활동 등 국가 공약 사업을 교육청이 집행할 때 내국세 비율을 상향 조정했다”고 말했다.
‘증세’ 논의로 근본 해법 마련해야
정부와 시도 교육청 모두 부채 규모가 상당한 만큼 누리 예산을 어느 쪽이 부담하든 근본적으로는 증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기존의 ‘증세 없는 복지’라는 정치적 수사에 얽매이지 말고 재원 확충을 위한 합리적인 증세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상진 교수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4% 포인트 이상 낮은 19%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법인세를 늘려 그 일부를 교육세로 활용하는 방안 등을 20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대 교수는 “개발 시대 관성으로 국토 건설과 사회간접자본(SOC)사업에 쏟아 붓고 있는 돈을 줄여 이를 복지 재원으로 쓰는 방안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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