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을 노리는 골퍼 A씨로 부터 심야에 난대 없이 전화가 왔다. 당일 있었던 라운딩 겪은 분노를 하소연 하기 위한 전화였다. 분노의 원인은 상대방의 조언이었다.
새벽에 동료들과 필드를 나선 A씨는 본인의 루틴에 따라 한 홀 한 홀을 지나갔다. 어느 골프장에서건 80대 중반의 타수를 꾸준히 유지해 왔기에 자신의 골프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라운드 초반 한 동반자의 조언 한마디가 A씨를 이른바 '100돌이'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의 조언을 받아드리지 않고 자신만의 골프를 지향하려 무단히 노력했지만 홀을 거듭할수록 조언자가 남긴 한마디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고 한다. 악몽의 18홀을 마친 A씨는 100돌이 클럽에 재 진입한 스코어카드를 받아보며 담배 한 모금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를 흔들어 놓고 지옥을 맛보게 한 조언은 흔한 한마디였다. '공을 힘차게 눌러쳐봐'
골퍼들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루틴(routine)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아마추어와 프로를 막론하고 긍정적 징크스(Jinx) 즉, 자신이 잘 쳤을 때 만들어진 행동과 타이거우즈와 같은 유명선수들이 만들어낸 동작들을 따라하며 자연스럽게 내 것으로 익혀진 습관이기 때문이다. 한창 골프에 재미 붙이며 싱글골퍼가 되고자 갈망했던 A씨에게 던져진 조언한마디에 그는 평정심을 잃었다.
한편으로 보면 A씨가 일명 속좁은 사람으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A씨는 남자 중에 상남자이고 항상 너그러우며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같이 라운딩을 가면 교과서적인 멋진 폼으로 드라이버를 날리고 퍼팅 시에도 뛰어난 집중력을 자랑한다. 이런 분이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그런데 이런 일이 흔하디 흔한게 골프다. 무심결에 던진 말 한마디로 상대를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게 골프라는 것이다.
특히 이런 조언은 일에서 라이벌 관계 또는 꼭 나를 이기고 싶어하는 상대, 나보다 골프 실력이 조금 더 낳은 사람일수록 잘 먹혀 들어간다. 초반 라운딩에서 상대가 너무 잘 나간다 싶으면 한마디를 툭 던져 놓고 상대의 흐름을 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가 흐름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한 단계 위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조언을 한다면 웬만한 아마추어 골퍼들은 평정심을 잃기 십상이다.
'김사장! Head Up되서 공이 안 맞는 거야!', '공을 힘차게 눌러 쳐봐!', '퍼팅스트록을 못하고 있네!'등의 조언하는 듯한 어드바이스는 하지말자. 자칫 골프에서 승리하고 싶어서 작전을 펼친 소인배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마다 자신만의 루틴을 가지고 있는 골퍼들에게 전해진 조언 한마디가 자칫 지적 질이 되어 평생 두고두고 원망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한번 잃어버린 루틴은 다시 찾아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소인배가 될지언정 이기고 싶다면 악의 적인 조언의 효과는 100만 점 이상이다. 상대방의 플레이를 망쳐놓을 수 있는 강력한 비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성락 박사는 고교시절까지 야구선수생활을 했으며, 이후 골프로 전향해 2012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준회원으로 프로에 입문하였다. 2014년 한양대학교에서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양대학교에서 골프강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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