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전북 현대 소속 차모 스카우터의 심판 매수 혐의가 드러난 23일. 오후 늦게 구단이 낸 보도자료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해당 스카우터는 구단에 보고 없이 개인적으로 (심판 매수행위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포츠 정신에 벗어난 스카우터의 적절치 못한 행위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사죄 한다.’
보도자료를 몇 번 읽어봐도 분명 ‘사죄’보다는 ‘구단은 무관하다’는 쪽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였다.
스카우터의 단독 행위라고 믿기 힘들다는 여론이 들끓자 전북 구단 관계자가 24일 내놓은 반박 근거는 더 기막혔다. 그는 “스카우터의 연봉이 1억원이 넘는다. 작년에는 이런 저런 수당을 합쳐 1억7,000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이를테면 500만원은 개인 돈으로 심판에게 줄 능력이 된다는 뜻인데 안 하느니만 못한 해명이었다.
차씨가 부산지검 조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올 초부터 파다했다.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도 “훨씬 전 조사를 받았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구단도 이 사실을 인지했어야 정상이다. 몰랐다면 내부 보고 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린 거다. 검찰 조사를 받고 약 반년 간 차씨는 평소처럼 근무했다. 최 감독도 “당시 참고인으로 조사받은 사람이 많아서 별 내용이 아닌 것으로 알았다”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프로축구연맹은 어떤가.
연맹은 작년 말 경남FC의 심판 매수 사건이 터진 뒤 상벌위원회를 열어 구단에 벌금 7,000만원과 승점 10 감점을 징계를 내렸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에 연맹은 이 정도면 중징계라고 항변했다. 앞선 경남FC 사례를 보면 전북도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려야 한다. 전북은 경남과 달리 고위층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아직 없고 돈을 건넨 횟수와 금액이 훨씬 적다. 반면 ‘리딩 클럽’ 전북이 연루됐다는 사실에 경남FC 때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팬들은 강등과 같은 강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연맹이 이번에는 일벌백계의 조치를 취할 지 의구심이 든다.
이런 일도 있다.
연맹 상벌위는 작년 경남FC 사건에 연루된 5명의 심판 중 2명만 영구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나머지는 상벌위 당시 연맹 소속이 아니어서 징계를 못 내리고 이사회를 거쳐 상위기관인 대한축구협회에 징계를 요청했다. 하지만 협회는 3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연맹이 징계한 2명만 영구 축구활동 금지 처분을 내렸다. 산하 연맹에서 먼저 징계해야 협회도 징계를 내릴 수 있다며 나머지 3명은 연맹으로 돌려보냈다. 이들 심판이 1심 판결을 받은 게 2월 초다. 3개월이 지났는데 최상위 기관이라는 협회와 연맹은 서로 다른 법리 해석을 내리며 핑퐁 게임 하고 있다. 이들 심판 중 누군가가 경기에 나가 휘슬을 불어도 어쨌든 규정상 문제는 없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단순히 개인의 판단미스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 축구를 움직이는 수뇌부들이 최근의 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악재가 터지면 ‘일단 덮고 보자’며 쉬쉬하고 ‘우리가 남이가’라며 감싸주길 바라고 ‘한국 축구를 위해 눈 감아 달라’고 하던 행태가 또 반복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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