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늦은 시각인데도 호텔 밴이 공항까지 무료로 픽업을 나와주었고, 호텔에 도착하는 순간 직원이 내 이름을 “연선”이라 친절하게 부르며 칵테일을 건네주었다.
다음 날 아침 앙코르와트 유적지 대신 시내 행을 택했는데, 실패였다.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에 화들짝 놀라, 호텔로 서둘러 피신을 왔다. 더군다나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몸이 놀랐나 보다. 팔다리가 쳐지고, 오른쪽 머리가 욱신거리더니, 오른 눈알이 빠질 듯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한 호텔의 직원에게 죽을 부탁하고 약을 먹고 누웠다. 사실상 첫 번째 관광 일인데,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니요, 안 하는 것도 아니게 보내다니.
아침이 되자 다행히 몸이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외출이 내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텔에서 혼자 무얼 하겠는가. 전날 시내에서 일일 투어 예약도 했겠다, 70%의 의무감을 가지고 관광 준비를 했다.
밴 한 대가 호텔 앞에 섰다. 전날 예약한 1일 투어 차량이었다. 차량에 탔더니 동양인은 나 말고 필리핀 남자 한 명이 유일했다. 나머지 열댓 명은 모두 서양인들이었다. 낯설었지만 뭐 괜찮았다. 그들 역시 내가 낯설 테니 말이다.
패키지 여행을 정말 싫어하는 탓에, 일일 투어도 예약할 계획이 없었다. 사실 난 앙코르와트가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 영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는 분명 혼자 걸어 다녔단 말이다.
심히 무식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앙코르와트 유적지”라고 부르는 곳은 “앙코르와트”라는 사원을 포함해서, 10세기에서 15세기 동안 여러 왕조를 거쳐 밀림 속에 건축된 여러 사원, 궁전, 무덤 등의 유적들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비유하자면, 종묘 경복궁 비원 덕수궁 남대문 등을 그냥 외국인들에게 “종묘”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따라서 이 유적에서 저 유적까지 이 더위에 걸어서 이동하는 건, 고행 수행자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마터면 일사병으로 기절할 뻔한 걸, 친절 대마왕 밴이 무식을 깨쳐 준 덕에 일일투어를 예약했다.
일일 입장권(20달러)을 사고 입장을 했는데도, 한참을 더 차를 타고 가야 유적지가 겨우 하나 나왔다. 멀리서 봐도 해자에 시원하게 쌓여 있는 사각 유물이 찬란하며 단정했다. 바로 그것이 앙코르와트라고 했다.
앙코르와트 유적은 밀림 속에서 500년 이상 방치되어 있던 것을 길을 잃은 프랑스 선교사가 발견했는데, 프랑스인은 이 생생한 유적을 보자마자 그 길로 줄행랑을 쳤다고 했다. 그 사람의 공포가 생생했다. 밀림 속에서 길을 잃고, 빽빽한 나무, 습기, 열기, 벌레 소리, 기괴한 새 소리 속에서 헤매며 탈진하기 직전에 느닷없이 우뚝 솟은 돌 유적을 발견한 순간, 새로운 세상에 떨어진 기분이 들면서 누군가가 뛰쳐나와 독 묻은 칼을 휘두를 것 같았을 것이다.
말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정교하고 단단하게 건설된 유적이 무려 500년간이나 혼자 밀림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는 게 말이다. 자신의 후손들이 숲 밖에서 열강의 침략에 힘들어할 때, 소리치고 싶지 않았을까. 너희의 조상이 그렇게 강했고, 그래서 우리가 아직도 이 속에서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은 느긋하게 유적을 감상할 수 있게 놔두지를 않았다. 우리(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온 20대 여성, 이탈리아에서 온 연령대 추정 불가능한 남성, 독일에서 온 아마도 30대인 남성,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이야기 동무가 되어 있었다)가 무리에서 이탈한 것이다.
가이드가 15분 후 2층 서쪽 문 앞에서 집합하자고 했는데, 이 계단 따라 저 복도 따라 걷다 보니, 이 문이 저 문 같고 요 방향이 저 방향 같아 그만 길을 잃은 것이다. 당황한 마음에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 보니 우리는 더더욱 엉뚱한 곳에 있었다. 스마트폰에는 왜 나침반 기능이 없는 것일까. (다음 회에 계속)
*‘혼여족’은 혼자 여행하는 족의 준말로, 혼밥족에 빗대어 필자가 만듦.
임윤선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