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교회 여성 부제의 역할을 연구할 위원회를 설립하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2일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린 세계 수도회 장상연합회 총회(Union International Superior GeneralㆍUISG)에서 한 이 말로 세계 가톨릭 교회가 들썩였다. 가톨릭 성직자는 사제와 부제로 나뉜다. 현재는 두 직분 모두 남성에게만 허락된다. 사제는 미사집전, 고해성사를 포함한 각종 성사를 관장한다. 부제는 미사 중 강론과 일부 성사를 관장할 수 있지만 사제품을 받기 전까지는 미사를 집전하거나 고해성사를 이끌 수 없다.
교황의 발언은 지금까지 여성에게 제한돼 있었던 성직의 길을 일부 열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반색하는 여론과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외신 보도가 잇따랐지만 교황청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UISG 행사에 참석하고 온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총원장 김혜윤 수녀는 최근 한국일보와 만나 “UISG 설립 50주년을 맞아 처음 교황님과 전체 참석자들이 1시간 30분간 질의응답을 나눈 자리”였다며 “통상 인사말이나 짧은 강연을 하는 정도였는데 자리 자체가 꽤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말했다. 김 총원장은 한국 측 대표 14명 중 한 명으로 당시 현장을 지켜봤다. 김 총원장은 로마교황청 성서대에서 공부한 뒤 2003년부터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국내 가톨릭대 여성 첫 전임교수를 지낸 성서학자다.
“주최 측이 교황님께 건넨 첫 번째 질문부터가 ‘여성의 사제직’에 대한 입장과 ‘왜 여성수도자들에 대한 논의를 당사자들을 배제한 채 하는가’였고, 두 번째 질문이 여성 종신부제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워낙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이 질문과 방식이 적절했느냐 아니냐를 놓고 추후 참석자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었죠.”
교황청 수도회성 산하기구인 UISG는 3년마다 로마에서 총회를 연다. 교황과 대담을 위해 연초부터 각국 참석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모아 미리 교황청에 전달했다. 교황청 바오로6세 대강당에서 열린 이날 대담에는 870여명의 수도원장, 수도회 장상이 참석했다. 전세계 수녀 대표자들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허심탄회하게 마주앉은 첫 자리에서 제기된 최초화두가 ‘여성 사제’ 문제였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사제의 원형인 예수의 열두 제자가 모두 남성이었다는 등의 신학적 근거를 토대로 성직을 남성에게만 연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돼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선 크게 공감하고, 여성의 관점은 교회가 결정하고 일을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며 “다만 그러기 위해 꼭 성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다만 “부제직에 대해서는 초기교회 전통에 대한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으니 위원회를 결성해 연구하자는 뜻을 수용한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받은 느낌이 ‘불가하다’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후 참석자들의 별도 회의에서 일부 진보 성향 인사들을 위주로 ‘정말 실망했다’ 는 반응도 나왔고, 반대로 ‘교회 전통에 충실하려는 모습에 감사하다’는 의견도 있었죠. 또 ‘도대체 왜 이런 중요한 질문 내용과 순서를 함께 정하지 않고 스태프들이 던졌냐’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고요.”
일부 참석자들은 교회, 세계, 생태 문제 등을 고민하는 질문 대신 하필 ‘여성 수도자’로서 정체성을 반영한 질문을 우선 제기한 주최측에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총원장은 “꼭 필요하고 앞으로도 누군가가 계속 던질 수 밖에 없는 질문이지만 교회가 여러 위원회를 통해 아주 장기간 고민해도 풀기 어려울 문제의 답을 그런 자리에서 질의응답으로 듣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저도 젊은 시절부터 개신교 여성 목사님, 성공회 여성 신부님, 비구니 스님 등 여러분들로부터 질문도 받고 제 스스로도 많은 질문을 던졌죠. 왜 그럴까. 정말 불가한가. 중요한 문제고 앞으로도 던져질 질문이죠. 그래도 일단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에 충실할 때 오히려 상황을 진보시킬 수도 있지 않나’라고 자주 생각했어요.”
이번 총회의 주제는 ‘생명을 위한 지구적 연대’였다. 지구의 생태, 세상의 약자 중의 약자들, 여성 수도자 등 세 그룹을 생명 회복의 대상으로 보고 고민했다. 김 총원장은 “약자 중의 약자를 위해 공장의 논리보다는 생명의 논리로, 기술보다는 마음으로 생명을 어루만져야 한다는 메시지에 감명 받았다”고 했다.
”교회는 (여성 성직 문제를)끊임없이 숙고할겁니다. 그러는 동안은 제 주변의 ‘나는 주변부에 있다, 아프다’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약자 중의 약자들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이에요. 다른 직분이 아니라 수도자이니까요. 부제품, 사제품 없이도 이런 생명을 살리고 존엄을 높이며 자신을 온전히 살아내는 분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많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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