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만 있으면 좋겠어요. 진영이 얼굴을 다시 보기 전에는 내가 죽을 수도 없어서….”
지난 19일 만난 박정문(52)씨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염없이 책상 위에 놓인 전단 속 갓난 아이의 사진을 바라보며 눈시울만 붉혔다.
박씨는 19년째 잃어버린 아들을 찾고 있다. 둘째 아들 진영군은 태어난 지 100일도 안된 1997년 10월19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서울 중구 중림동의 친구집에 가던 아내가 서울역 지하차도에서 용변이 급해 화장실 앞에 있던 남성에게 아이를 잠시 맡긴 게 화근이었다. 남성은 진영이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지인의 일을 돕기 위해 아내와 떨어져 인천에서 홀로 생활 하던 박씨는 아들의 실종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서울로 달려왔다. 주말에만 이따금 집에 들러 품에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한 자식이었다. 박씨는 백일잔치를 못해준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고 했다. “내가 같이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돈이 뭔지… 죄책감만 듭니다.”
그날 이후 박씨는 생계를 팽개치고 아들을 찾으러 전국을 떠돌았다. 수천장의 전단을 제작했고, 아동보호시설들을 이 잡듯 뒤졌다. 실종 5개월째가 된 어느 날, 부산 자갈치시장 쪽에서 비슷한 아이를 봤다는 제보 전화가 왔다. ‘제발 맞기를’ 수없이 맘 속으로 기도하며 달려갔지만 진영이가 아니었다. 제보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술이 없으면 잠들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아이를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매면서 가세도 기울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 갔다. 가정불화까지 겹치면서 박씨는 진영이를 잃어버린 지 9년 만에 아내와 이혼했다.
그래도 박씨는 진영이를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신문 배달과 청소 일로 돈을 벌면서 꾸준히 전단을 돌렸다. 그러나 그가 아들 찾기에 힘을 쏟는 동안 진영이 형과 두 동생 등 어린 삼남매는 14평의 반 지하 월세방에 홀로 남겨졌다. 급기야 2006년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이웃주민이 아동학대죄로 박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법원은 아이들을 보호시설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현재 박씨는 종종 삼남매와 만나고 전화통화도 하지만 여전히 떨어져 지내고 있다. 자녀들은 그런 박씨를 오히려 걱정한다고 한다. 그는 “올해 어버이날에는 고등학생이 된 셋째아들로부터 ‘몸은 비록 떨어져있지만 마음은 항상 같이 있으니 건강 좀 챙기라’는 편지를 받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박씨는 지금 빚을 갚고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물론 진영이를 찾는 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진영이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너무 어렸을 때 헤어져 장담 못하겠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이어 “못난 부모를 만나 엄마ㆍ아빠 품을 일찍 떠나게 해 미안한 마음 뿐”이라며 “먼 발치라도 좋으니 딱 한 번만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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