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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 3분의 1을 의사일정 협상… “1시간 가방 싸고 3시간 수업한 셈”

입력
2016.05.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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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 종료일 등 결정에 시간 낭비

정기국회서도 100일 중 14일 써

여야 세월호특별법 제정 놓고 공방

작년 7월 법안 1건도 처리 못하고

11월 마지막 정기국회서도 파행

비효율적 의사일정 관행 없애기

개혁자문위 ‘캘린더 국회’ 방안

운영위 논의 거치며 사라지기도

국회 정문 틈 사이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회 정문 틈 사이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한국일보 자료사진.

여기 한 학생이 있다. 그런데 매일 책가방 싸는 데 1시간 이상을 허비한다. 정작 수업시간은 3시간 안팎. 그러면서도 준비물을 빠뜨리기 일쑤다. 성에 차지 않으면 가방만 교실에 던져놓고 수업은 빠지는 일도 예사다. 이런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우리 국회의 모습이 그랬다.

회기만 있고 회의는 없는 ‘개점휴업’ 국회

본보가 19대 국회 회기 중 여야가 의사일정 협상에 쏟아 부은 시간을 따져본 결과, 평균 7.9일에 달했다. 의사일정 협상은 통상 임시국회나 정기국회 전 여야 원내지도부가 만나 개회일과 종료일, 본회의 날짜, 주요 처리법안 등을 정하는 일을 말한다. 2012년 7월 임시국회부터 올해 4월 임시국회까지 협상기간 검증이 가능한 총 30회의 임시국회를 대상으로 했다.

의사일정을 짜는 데 8일을 할애한 국회가 정작 일한 기간은 평균 23.8일. 공부 시간의 4분의 1을 서로 밀고 당기며 시간표를 완성하는 데 쓴 셈이다. 회기가 100일로 정해진 정기국회 역시 의사일정 협상에 평균 14.25일이 걸렸다.

한 달 넘게 공방만 하다 해놓은 일 없이 국회 문을 닫은 경우도 있었다. 2014년 상반기부터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여부를 놓고 여야가 담판을 짓지 못하면서 7월 임시국회까지 개점 휴업한 것이다. 7월 16일 여야 지도부가 만나 최종 합의를 시도했지만 불발됐다. 우여곡절 끝에 같은 달 21일 문을 연 국회는 이후 30일 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지난해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는 11일 간 의사일정 협상을 통해 개회했지만, 11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야당이 반발하면서 파행되기도 했다. 다시 정기국회를 정상 가동하는 데는 또다시 13일 간의 줄다리기가 필요했다.

지난해 새누리당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시절 원내수석부대표로서 야당과 의사일정 실무협상을 했던 조해진 의원(무소속)은 “직장인이 출근할 때마다 매일 협상하고, 학생이 등교할 때마다 합의해야 겨우겨우 수업일정이 정해지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협상 때마다 ‘이런 협상을 왜 해야 하나’하는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게다가 여당이나 야당이나 자기들에게 불리한 현안이 터지면 국회를 열더라도 기간을 최소화 하려고 한다”며 “그러다 보니 회기만 있고 회의는 없는 임시회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의사일정 요일제’, 여야 반대에 좌초

학계에서 수년 전부터 ‘캘린더 국회’가 돼야 한다고 제안한 것도 이런 비효율적인 의사일정 협상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다.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국회법의 토대가 됐던 국회개혁자문위원회 결과보고서에는 애초 이 같은 ‘캘린더 국회’ 내용이 포함돼있었지만 국회 운영위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 여야 추천위원으로 구성된 국회개혁자문위는 2014년 12월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주요 의사일정이 교섭단체대표 간 협의에 따라 이뤄져 국회 일정의 예측성이 떨어진다”며 “상임위 역시 정례적으로 개최해 법안을 내실 있게 검토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시 자문위는 ‘의사일정 요일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본회의의 경우 ▦의제별 대정부질문은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안건처리 본회의는 목요일 오후 2시 개회로 명시하고, 상임위의 경우엔 ▦월ㆍ화요일 전체회의 ▦금요일 공청회ㆍ청문회 식으로 못박은 것이다. 상임위 소위도 개회 요일과 시각을 명시했다.

그러나 국회 운영위 논의를 거친 법안에선 이 내용이 제외됐다. 대신 8월 임시국회의 명문화, 폐회 중인 3ㆍ5월 셋째 주에 정기국회 이전 결산심사를 위한 상임위 개최 등만 포함됐다. 여야는 이를 ‘상시국회’라고 포장했지만, 학계에선 “상시적으로 열기만 한다고 ‘상시국회’가 아니다. 정해진 날짜에 이의 없이 회의가 이뤄져야 ‘상시국회’”라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국회 운영위원이었던 한 의원은 “여야 할 것 없이 의사일정 요일제를 두고 ‘그렇게 미리 정해뒀다가 지역일정이나 해외출장과 겹치면 어떻게 하느냐’, ‘의정활동의 자율성이 떨어진다’ 등의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200일 넘게 문만 열어두고 일은 안 하는 국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게 ‘일하는 국회’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박진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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