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쓸 일이 많지 않다. 문서 작성은 물론이고 편지 보내기까지 이메일로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펜이나 연필보다는 자판을 더 편안해 한다. 특히 젊은이들 중에는 어려서부터 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악필’인 사람들이 많다.
삐뚤빼뚤, 되는 대로 글씨를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나타내는 우리말 표현은 무엇일까? ‘개발새발’ 아니면 ‘괴발개발’? 우리말 관련 퀴즈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제되던 이 문제의 답은 예전에는 ‘괴발개발’이었다. 그런데 요새는 둘 다 정답이다. 본래는 ‘괴발개발’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쓰는 ‘개발새발’도 최근에 표준어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이다. ‘괴’는 고양이의 옛말로 지금은 ‘괴 밥 먹듯 하다’나 ‘괴 목에 방울 달고 뛰듯’ 같은 몇몇 속담들에만 남아 있다. ‘괴발개발’이란 말은 형편없이 써 놓은 글씨가 마치 고양이와 개가 이리저리 어지럽게 발자국을 찍어 놓은 모양 같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괴’가 고양이를 뜻하는 말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뜻 모를 ‘괴발개발’ 대신 뜻도 분명하고 발음도 쉬운 ‘개발새발’을 더 많이 쓰게 되어 결국 두 낱말이 복수 표준어가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쓰는 ‘쇠털’이 있다. 주로 ‘쇠털 같이 많은 날’처럼 쓰이는데, 이때 ‘쇠털’을 ‘새털’로 잘못 알고 쓰는 사람들이 있다. ‘새털’도 많기는 하지만 ‘쇠털’(소의 털)에 비할 바는 아니고 아직은 ‘쇠털’과 ‘새털’이 분명히 구분되어 쓰이므로 ‘새털 같이 많은 날’처럼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다. ‘새털’은 대신 ‘새털 같은 발걸음’처럼 아주 가벼운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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