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건너간 유학생 부부는 5살 딸아이를 동네 음악학교에 보냈다. ‘바이올린은 아이가 직접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악기니 더 흥미롭지 않겠는가?’ 지인의 권유에 부부는 바이올린을 가르쳤고, 아이는 곧잘 소리를 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비를 대신해 아이를 연주자로 키워낸 건 독일 공교육 시스템이다.
아이는 독일 공공단체의 음악가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9살에 뮌스터 음대 예비학교에, 17살에 이 학교 음대에 입학했고 쿠르트 마주어, 엘리아후 인발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와 한 무대에 섰다. 또래 한국 연주자들에 비해 단단하고 사려 깊은 태도, 감정을 절제한 섬세한 연주는 한눈에 띄지 않지만 두고두고 곱씹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이 특장을 고스란히 담아 2011년 발매한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도이치 그라모폰)는 출세작이 됐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29)이 앨범 발매 5년 만에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를 실황으로 선보인다. 연주 시간만 2시간 10분에 이르는 대곡은 대개 두 차례로 나눠 연주회를 갖지만 그는 29일 LG아트센터에서 단 1회로 완주한다.
김수연은 23일 한국일보와 만나 “최고의 바흐를 지금 당장 녹음해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면 앨범을 내지 못했다”며 “20대 나의 음악을 담는다는 마음으로 녹음했고, 연주회를 앞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바흐 음악이라고 하면 흔히들 비장미를 많이 생각하는데, 녹음하면서 오히려 인간미를 많이 발견을 했어요. 그리고 연주자인 저를 내려놓아야 하는 음악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거대한 산’으로 비유되는 이 난곡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기로 마음먹은 건 몇 년 전 한 마스터클래스에서 바로크음악 전문가를 만나면서다. “그때 제가 그렸던 바흐 이미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죠. 사실 바흐 음악은 템포나 아티큘레이션(연속된 선율을 자의적으로 끊어 명확하게 연주하는 것)이 다 제멋대로 가능해요. ‘다르게 접근할 수 있겠구나, 악보를 내 눈으로 보면서 나만의 소리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자유로움이 생겼죠.”
앨범에 평단과 애호가들의 호평이 쏟아졌고, 김수연은 2년 전 이탈리아 스트레자 페스티벌에서 바흐 무반주 전곡 연주를 선보였다. 다만 그때와 달라진 건 바이올린과 연주장의 차이, 그리고 5년의 시간이다. 녹음 당시에는 1750년산 카밀후스 카밀리를, 2년 전 연주회에서는 1684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현재는 1702년 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한다. “카밀리도 고급스럽고 순수한 음색이었지만 힘이 좋거나 소리가 끝까지 뻗는 게 좀 부족했어요. 지금 바이올린은 고급스러움도 있지만, 울림이 굉장히 좋고 무대에 섰을 때 화려하죠.” 깊은 울림 덕분에 연습마저 행복하지만, 다목적 공연장에서 완주 준비가 녹록하지만은 않다. 두 차례 바흐 완주를 가졌던 교회와 달리, 상대적으로 잔향이 적은 다목적 공연장에서는 소리를 끝까지 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두 배는 더 든다고.
“바흐 무반주 소나타는 인간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보듬어줄 수 있는 음악이에요. 연습하면서 위로받기도 하죠. 그런 마음으로 연주회에 와주시면 좋겠어요. 바흐는 연주자 호흡만으로 이끌 수 없는, 관객과의 호흡이 특히 중요한 음악이니까요.”
(070)8879-8485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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