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100조 클럽 달성했지만
해외 경쟁업체들 거센 추격 받아
日 도시바 낸드플래시 턱밑까지
저가폰 시장선 폭스콘 등과 사투
“조선ㆍ해운 넘는 국가 위기 우려
중견전자 키워 의존도 낮춰야”
우리나라 산업의 주축인 전자업이 고질적인 허리병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4개 대형업체로 이뤄진 머리가 매출의 70%를 감당하는 반면 허리와 다리라고 할 수 있는 중견ㆍ중소기업은 너무나 약하다. 게다가 매출의 절반을 담당하는 삼성전자에 대한 경쟁업체들의 거센 공략으로 국가경쟁력 약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23일 한국2만기업연구소가 국내 전자업종 1,000대 기업의 최근 2년간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1조원 이상인 상위 10개사 매출은 279조9,402억원으로 전체 1,000개사 총매출(312조7,639억원)의 79.2%를 차지했다. 1,000개사의 매출은 2014년(324조3,561억원)보다 3.6% 감소했지만 상위 10개사 매출 비중은 2014년 77.1%에서 2.7%포인트 상승하며 오히려 더 커졌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상위 4개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았다. 유일하게 100조 클럽에 들면서 업계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은 135조2,050억원으로 43.2%의 비중을 차지했다. 2~4위인 LG전자(28조3,684억원ㆍ9.1%) 삼성디스플레이(26조3,971억원ㆍ8.4%) LG디스플레이(25조8,564억원ㆍ8.3%)까지 합치면 4개사가 1,000개사 총매출의 69%(215조8,266억원)를 점유했다.
문제는 국내 전자업계 매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해외 경쟁업체들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는 데에 있다. 만약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하락하면 우리나라 전자업계 자체가 흔들릴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비휘발성 메모리(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일본 도시바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반도체 전자상거래사이트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1분기 낸드플래시 매출은 28억2,600만달러(약 3조3,670억원)로 전 분기대비 1.2%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2위인 도시바는 1분기 매출이 17억4,400만달러(2조780억원)로 전 분기보다 12.8%나 급증했다. 증가율만 보면 삼성의 10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은 같은 기간 1.5%포인트(33.6→35.1%) 상승하는 데 머무른 반면 도시바는 3%포인트(18.6→21.6%)나 커지면서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좁혔다.
더구나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굴기’(우뚝 일어섬)를 선언한 중국도 최근 1년간 반도체 공장 투자에만 최소 75조원을 쏟아 부었다. 이들 공장에서는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뿐 아니라 메모리까지 생산된다.
전자의 또 다른 축인 가전과 휴대폰에서도 중화권 업체들의 반격이 거세다. 대만업체 폭스콘은 지난 3월 일본의 가전업체 샤프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 19일엔 노키아 휴대폰 사업부까지 넘겨 받으면서 삼성전자에 도전장을 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고급 휴대폰 시장에서 애플 아이폰, 중저가 시장에서는 10년간 아이폰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들어 온 폭스콘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중저가 휴대폰 시장에는 이미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업체들도 가세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성장세가 꺾이면 조선, 해운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적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오일선 한국2만기업연구소장은 “워낙 장기간 진행된 대기업 위주의 육성책이 낳은 부작용”이라며 “전자산업의 뼈대가 되는 중견ㆍ중소기업을 키워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마련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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