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부터 만 12세 여아는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무료로 하고, 초경을 시작한 여성은 산부인과에서 무료 건강상담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제3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초경 여성 건강 바우처’사업을 확정해서다.
초경은 여성 정체성은 물론 건강에도 큰 의미가 있다. 초경 이후 호르몬 분비가 달라지고 자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초경과 성 접촉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초경 바우처 사업은 시기 적절하다고 평가 받을 만하다.
그런데 초경 바우처 사업이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했다. 무료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이 화근이었다. 정부의 원 계획은 산부인과에서 초경을 시작한 여성에게 건강상담만 할 예정이었다. 무료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은 초경 바우처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없었다. 예산확보가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막판에 정부가 무료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초경 바우처 사업에 포함시켰다. 36만~45만원 정도인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무료로 하게 된 것이다. 초경 여성 건강상담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처럼 무료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에만 관심이 쏠리게 됐다.
이로 인해 생리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없애고, 성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마련된 초경 여성 건강 바우처 사업이 자궁경부암 무료 예방접종만 부각되고 있다.
다음달부터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이 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국가필수예방접종(NIP)으로 지정되면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소아과, 가정의학과, 내과 등 관련 진료과에서도 이 백신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벙어리 냉가슴이다. 산부인과가 아니라 다른 과에서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하게 되면 초경 여성 건강을 위한 바우처 사업의 본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은 단순히 주사 맞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 건강 상담도 해야 한다”며 “그렇다고 다른 진료과에서 예방접종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대학병원 소아과 교수는 “아무리 초경을 시작했다 해도 아직 어린 여자 초등학생들이 산부인과를 찾기는 어려울 일”이라며 “평소 다니던 소아과에서 편하게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을 하려 할 텐데 솔직히 산부인과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 국민건강과 직결된 정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결정해야 한다. 여성 건강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도입된 초경 여성 건강 바우처 사업이 국가필수예방접종을 서로 하려는 의사들의 밥 그릇 싸움으로 변질될까 걱정부터 앞선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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