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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북핵 협상 1세대의 퇴장

입력
2016.05.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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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상한 외교관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저속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회담 과정에 우리 쪽 입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를 발가벗기려 하는가”라며 고성을 지르곤 했다.’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된 1993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측 협상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정치ㆍ군사담당 차관보가 북측 대표인 강석주 당시 유럽 담당 외교부 부부장을 묘사한 인물평이다.

▦ 갈루치는 강석주와 차석대표인 김계관 당시 유럽 순회대사를 ‘배드 캅, 굿 캅’이라고 일컬었다. 제네바 북미협상에서 강석주는 북측 입장을 고집하며 윽박지르고, 김계관은 유연한 자세로 미측 인사들을 달래며 입장을 타진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강석주는 마냥 경직되지는 않았던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며 한 구절을 읊어 미측 인사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강석주와 여러 차례 만났던 ‘두 개의 한국’저자 돈 오버도프 전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북측의 다른 고위 외교관에 비해 훨씬 솔직하고 적극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 1994년 김일성 사망 직후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내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수습한 강석주는 승승장구했다. 김정일 시대에 강석주는 외무성 제1부상으로 대미 외교와 북핵 협상을 막후에서 이끌었다. 미국은 벼랑 끝 전술로 대표되는 강석주식 협상 스타일에 골머리를 앓았다. 북한이 지난 22일 그의 장례식을 국장(國葬)으로 한 것도 ‘반미 핵 대결전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업적을 예우한 것이리라. 그는 말년에 내각 부총리와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를 지냈다. 숙청과 하방이 난무한 3대에 걸쳐 지도자 신임을 잃지 않은 몇 안 되는 고위 인사다.

▦ 김일성 생전인 제네바 북미협상 첫 회동에서 강석주는 영변 원자로 가동에 대해 전력난 해결을 위한 것이며 핵무기 제조의사는 전혀 없다고 했다. 김정일 시대 들어 플루토늄 재처리와 고농축 우라늄 개발 사실이 드러난 뒤 북한은 미제의 핵 위협에 맞선 자위적 수단이라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했다. 3대인 김정은은 이달 초 노동당 규약에 핵 보유국임을 명시하고 당당히 핵군축회담을 미국에 요구했다. 기만 전술의 효과 측면에서 20여 년에 걸친 북한의 핵 협상은 성공적이라 할 만하다. 그 주역이 갔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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