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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美 경제의 날갯짓이 열어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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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美 경제의 날갯짓이 열어갈 세계

입력
2016.05.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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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미국경제가 인류사에 있어서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체코슬로바키아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이 가장 잘 보여 준다. 신세계 교향곡은 과거 유럽의 봉건왕조체제의 속박을 벗어나 역사적 질곡이 없는 새로운 땅에서 꿈꾸던 신세계를 실현하는, 바로 그 감동을 묘사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메리카는 곧 이어 발생한 프랑스 혁명을 통해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폭제가 됐다. 이렇게 전 인류의 새로운 꿈을 대변하던 미국은 20세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정치ㆍ경제ㆍ군사ㆍ문화 모든 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세계 경제를 주도해 온 미국의 역할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것은 지난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가 발발하면서부터다. 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2008년부터 양적완화 정책 등 특단의 경제 정책을 포함한 경제 회복 노력을 해 왔지만, 최근까지도 경제 회복세는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경제 위기 이후에도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는 도리어 심화되고 노동자들의 명목임금은 2007년 수준에 멈췄으며 평균 실질소득은 꾸준히 감소했다. 그 결과 최근 미국 대선에서 보듯 극단적인 선동 정책을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되는 사태까지 초래됐다. 뿐만 아니라 최근 트럼프의 지지도가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1%포인트 이내로 접전을 벌이고 있어 전 세계가 긴장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이슬람국가(IS)보다 더 세계 질서에 위협적인 불안요인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세계의 안정을 유지하는 세계 경찰국가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던 미국이 어쩌다 세계경제와 세계질서에 위협적 요인으로 간주되는 상황이 발생했는지, 또 앞으로의 미국경제가 세계경제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거시적 통찰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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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적 금융자본주의와 포퓰리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및 세계 경제위기의 출발점은 미국 자산 시장의 몰락이다. 특히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이 거품에 광범위하게 투자됐던 주택저당증권(MBS)등 다양한 파생금융상품들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이 위기는 “미국은 ‘기회의 나라’가 돼야 한다”는 정치 포퓰리즘, 그리고 투기적 금융 기관들과 미국 금융 감독 기관에 만연했던 ‘도덕적 해이’의 결과다.

미국의 부동산담보대출제도는 ‘모든 미국시민에게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정치 포퓰리즘을 바탕으로 대출자의 신용과 무관하게 집값의 100%까지 부동산담보대출을 해주는 기이한 제도였다. 또 대출받아 구입한 집값이 하락해 대출 원금보다 낮아질 경우, 대출자는 개인 파산 신청만 하면 하락한 집값만큼만 대출금을 상환해도 됐다. 집값 상승이 예측되자 대출금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조차 모두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 담보대출을 통해 주택을 매입했고, 그 결과 2006년 부동산 거품은 절정에 달했다.

이처럼 회수 가능성이 매우 낮은 부동산담보대출에 기반한 주택저당증권 등 다양한 파생금융상품들이 대형 투자은행들에 의해 발행ㆍ유통됐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상업은행들까지 이런 위험천만한 상품에 대규모로 투자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미국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고, 주택저당증권 등 부실 자산에 투자했던 미국 대형 은행들이 모두 파산위기에 처하면서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이 금융위기의 극복을 위해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가 특단의 경기 회복 정책으로 실시한 것이 ‘양적 완화 정책’이다. 중앙은행이 신규 발행한 화폐를 사용해 장기 국채와 위험 자산인 주택저당증권 등을 대규모로 매입하는, 하늘에서 돈을 뿌리는 듯한 ‘헬리콥터 머니’정책이었다. 이렇게 시중에 풀린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은 심각한 경기침체를 완화하는 순기능도 했지만, 또다시 부동산 및 주식 등 유가 자산의 거품을 유발하면서 미국에서의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시장 개방과 세계화를 주도하면서 미국의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다국적기업으로 변모해갔다. 그 결과 제조업들은 임금이 저렴한 중국 등 개도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기업경쟁력과 채산성은 크게 개선됐다. 또 개도국에서 수입되는 저렴한 제조업 제품들은 소비자 물가안정 및 소비 기회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즉 적극적인 시장 개방과 세계화를 통한 다국적기업의 해외투자확대는 거시경제 지표 차원에서 미국 경제의 호황을 가능하게 한 주요 공신이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저렴한 가격에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 제품에 경쟁력을 잃고 실업자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또 미국 기업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실직도 늘어났다. 이들에 대한 재취업지원 등의 무역 구제 정책들은 제대로 취해지지 못했다. 그 결과 미국 내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1999년이래 최근까지 오히려 감소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양적완화 정책과 세계화 정책은 미국의 빈부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지난 30년에 걸쳐 꾸준히 하락시켰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불만이 사회적 분노로 바뀌면서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된 배경이 된 것이다. 지난 30년간 삶의 질이 꾸준히 하락하는 것을 참고 견딘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잃어버린 직장을 되찾아주고 하락한 소득 수준을 올려주겠다”는 트럼프의 약속은 블루칼라 노동자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아무런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통합정책이 미국 경제 부활의 열쇠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되고 힐러리 클린턴과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면서, 미국경제가 또 다른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먼저 트럼프는 1,100만명에 달하는 미국 내 멕시코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실현될 경우 700만명가량의 멕시코 노동자들이 추방된다. 노동력 부족으로 건설업과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며 약 6,000억달러의 생산차질과 2% 정도의 국내총생산(GDP) 감소가 우려된다.

트럼프는 또 ▦향후 해외에서 생산한 뒤 미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 3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대미무역흑자를 보이는 주요 교역 상대국에 대해 무역 보복정책을 취하며 ▦NAFTA와 한미 FTA등 기존의 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는 등의 보호무역정책을 취하겠다 공언하고 있다. 이 공약이 실현될 경우 미국의 수입물가상승으로 인한 소비자 후생감소와 함께 전 세계적인 보호주의 확산으로 미국 및 전 세계의 산업생산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트럼프는 향후 경기불황이 계속될 경우 국가채무 상환조건을 재협상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계획이 실현될 경우 미국 국채 위험도가 급등하고 금리가 폭등하는 등 세계금융위기 초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이외에 퇴역 군인들에 대한 대규모 복지지출 확대, 부자들에 대한 감세조치까지 약속하며 재정 적자 위기가 우려된다. 물론 최근에는 갑자기 ‘부자 증세’를 거론하고 있지만 향후 재정정책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설령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의 국가신인도가 크게 하락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세계경제의 미래를 열어가는 혁신의 본산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기술혁신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이뤄졌다. 실제로 전 세계의 특허 신청 건수에서 미국 기업들이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강력한 이윤 추구’가 장려되는 미국의 풍토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페이스북 등 새 역사를 만드는 기업들을 키워내고 있다.

이처럼 ‘혁신의 기관차’ 역할을 해 온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의 미래가 될지, 또 다른 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될지는 앞에서 살펴본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찾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즉 현재 좌절하고 있는 블루칼라 노동자들까지 포함하여 전 사회구성원이 이윤 동기에 기반한 혁신노력에 동참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결국 실직자들의 직업 재교육 등 적극적인 사회 안전망 정책과 소득 재배분 정책이 미국 경제의 장기적 안정을 위한 열쇠다. 우리나라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블루칼라를 포함한 모든 사회구성원이 낙오하지 않고 혁신에 동참할 수 있도록 탄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미래 경제를 여는 첩경이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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