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터 개인이 벌인 일이다.’
심판 매수 의혹에 휩싸인 전북 현대가 내놓은 한 장짜리 해명이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부산지검 외사부는 K리그 전직 심판 이모(37)씨와 유모(42)씨, 두 명의 심판에게 돈을 건넨 전북 스카우터 차모(49)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 심판은 2013년에 각각 2~3차례에 걸쳐 차씨로부터 매번 100만원씩 받은 혐의다.
2013~14년에 경남FC 안 모 전 대표이사의 지시로 구단 직원이 4명의 심판을 매수한 사실이 작년 말 드러나 충격을 줬는데 이번에는 클래식 최고 명문인 전북이 연루돼 파장이 더 크다. 전북은 진위 여부를 파악한 뒤 23일 오후 늦게 ‘차씨의 개인 일탈이다. 구단에 보고 없이 개인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확인했다. 금일부로 직무 정지됐으며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이다.
작년 말, 프로축구 관계자들은 ‘궁지에 몰린 안 전 대표가 강등되지 않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가 심판에까지 손을 뻗쳤다’며 사건을 애써 축소하기 급급했다. 경남은 2013년 가까스로 강등을 피했지만 2014년 결국 챌린지(2부)로 떨어졌다. 이를 근거로 ‘심판이 경남에 유리한 판정을 했으면 강등될 리가 없다. 심판들이 돈은 받았지만 편파 판정은 안 했으니 승부조작은 없었던 셈이다’라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아무리 구조적으로 클린 시스템을 갖춰도 심판 몇몇이 작정하고 양심을 속이면 막을 길이 없다’는 말도 나왔다. 사안을 철저히 안 대표와 심판 몇 명의 일탈로 몰아갔다.
물론 검찰도 이번 일을 일단 차씨의 단독 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검사는 “우리도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건 아닌지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다 알아봤다. 하지만 차씨 본인이 자신의 연봉에서 준 거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돈을 현금으로 건넸는데 그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것도 아니어서 추적도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혹은 여전하다.
경남 사건 때도 안 전 대표 지시를 받아 심판에게 돈을 전달한 구단 직원이 스카우터 출신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프로축구 관계자는 “이게 전북만의 문제이겠나. 하나 둘씩 파기 시작하면 K리그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K리그 구단들이 스카우터를 통해 암암리에 일종의 ‘떡값’조로 심판을 관리하는 관행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기 충분하다. 하지만 축구계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당장 누리꾼들의 조롱이 빗발치고 있다.
‘그 스카우터 대단하다. 자기가 감독이야 구단주야 왜 본인 돈 100만원씩 내면서 심판을 매수해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스카우터 개인이 경기당 백만 원 씩? 월급이 얼마 길래’ ‘대기업들은 저 스카우터 당장 채용해라. 회사를 위해 뇌물까지 줘가며 충성하는 직원이다’ 등등.
부산지검에 따르면 작년에 실형을 받은 4명의 심판이 항소하는 과정에서 이중 일부가 “전북에서도 돈을 받았다”고 실토해 이번 사건이 다시 수사선상에 올랐다고 한다. 앞으로 재판이 진행되면서 또 어떤 구단이나 관계자의 비위가 드러날지 모를 일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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