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제 사용 3개월 만에 이상증세
굳어졌던 폐 기능 좋아졌지만
목에선 여전히 ‘색색’ 숨소리만
“혹시 바닷바람도 아이에게 안 좋을까 싶어 부산에 살면서 바닷가 한 번 못 데려갔어요.”
101㎝ 키에 16㎏밖에 나가지 않아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박나원(5)양은 여느 아이들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목에 삽입된 호흡튜브(캐뉼라)를 제거하기 위해 나흘 전 수술을 받고 퇴원한 나원이의 목에선 ‘색색’ 숨소리만 들렸다.
생후 100일 만에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다가 병원 신세를 졌던 나원이가 23일 세상으로 나왔다. 이날 서울 종로구 환경시민보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원양 부모는 딸의 여린 폐를 망가뜨린 대기업을 처벌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2011년 10월 태어난 나원ㆍ다원 쌍둥이 자매는 첫 돌이 지나기 전부터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3개월 만에 기침과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 동생 다원이가 먼저 종합병원에서 ‘기흉’ 진단을 받았고, 돌이 지날 무렵부터 숨이 가빠진 나원이는 ‘폐섬유화증’이란 병에 걸렸다. 나원이는 결국 이듬해 12월 기도에 호흡튜브를 삽입한 뒤 튜브에 의존해 숨을 쉬어왔다.
나원이는 지난 19일 튜브를 삽입하면서 구멍을 뚫었던 연골을 메우는 수술을 받았다. 폐섬유화증으로 굳어졌던 폐가 다행히 나원이가 커가면서 기능을 되찾아 튜브를 제거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들어갈 수 있었다. 3주 정도 경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폐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부모는 안도했다. 엄마 김미향(34)씨는 “튜브를 꽂은 동안에는 엄마에게 가래를 빼달라고 부탁하려 해도 소리가 안 나와 목의 구멍을 막아가며 악을 써야 했다”고 회고했다. 현재 나원이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자매는 지난해 4월에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1단계 피해 판정을 받았다. 덕분에 의료비 지원은 가능해졌지만 수시로 갈아줘야 하는 호흡튜브와 입 안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쓰는 석션기 등 의료기기는 지금도 자비로 부담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맞벌이 부부를 대신해 쌍둥이를 돌봤던 나원이 이모 부부의 자책이었다. 김씨는 “얼마 전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모에게 나원이는 ‘이모가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아저씨들이 한 일’이라며 오히려 위로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이모 역시 지금 호흡 이상 증세를 겪고 있다.
나원이 가족이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 정부 실험에서 독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강제 사용금지 대상에서 제외됐던 ‘애경 가습기메이트’다. 해당 제품은 현재 검찰 수사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애경 제품 피해자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가 중지된 2011년 이후 발생했다는 점에서 나원이 사례는 더욱 중요하다는 게 환경단체 등의 지적이다. 김씨는 “사죄와 보상을 떠나 엄정한 수사가 진실 규명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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