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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은 여성 편견에 대한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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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은 여성 편견에 대한 저항"

입력
2016.05.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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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박은옥 부부의 외동딸인 정새난슬(35)의 왼손에는 마디마다 문신이 새겨져 있다. 지난해 이혼한 남편이 네 번째 손가락에 새겨준 다이아몬드 문양이 보기 싫어 다른 손가락에도 문신을 새겼단다.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외동딸인 정새난슬(35)의 왼손에는 마디마다 문신이 새겨져 있다. 지난해 이혼한 남편이 네 번째 손가락에 새겨준 다이아몬드 문양이 보기 싫어 다른 손가락에도 문신을 새겼단다.

그의 양쪽 어깨엔 견장이 새겨져 있다. 직접 꽃받침 문양의 밑그림을 그려 새긴 문신이다. 스스로를 전사로 설정해 “인생은 각개전투”란 뜻을 품고 한 일이다. 그의 몸엔 문신이 가득하다. 왼손 마디부터 허리 등에 15개가 넘는다. 도발적인 이 인물은 민중가수로 유명한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외동딸이자 가수와 디자이너 등 문화 전방위에서 활약 중인 정새난슬(35)이다.

신념을 드러내려 한 문신이 몸에 늘어날수록 그를 향한 편견의 시선도 완고해졌다. “저래서 어디 시집이나 가겠어?”란 비아냥은 참기 어려웠다. “만약 남자였다면 ‘저래서 어디 장가라도 가겠어?’라고 했을까요?” 여성에 대한 억압적 시선에 분노한 정새난슬은 저항과 반항의 의미로 지난 2007년 오른쪽 허벅지에 뱀 문신을 새겼다. “편견의 사회 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였죠.” 지난 9일 1집 ‘다 큰 여자’란 앨범을 내고 오는 25일 동명의 책을 낼 정새난슬이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를 찾아 들려 준 얘기다.

반골 기질은 그의 부모를 쏙 빼 닮았다. 정태춘·박은옥이 누구인가.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로 불합리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 사라진 시대의 나약함을 꼬집고, 음반 사전 심의에 반기를 들어 ‘아, 대한민국…’(1990)을 비합법적 테이프로 발매했던 ‘음악 전사’들이다. 정태춘·박은옥이 사유적인 노래로 시대의 불의에 맞섰다면, 딸은 온 몸에 문신을 새겨 여성차별에 보란 듯이 저항하고 있다. 정새난슬은 “몸에 문신이 늘 때마다 자유를 느낀다”고 했다.

“꾸미지 않는 순수함 대신 강인한 여성으로 살고 싶고 보이고 싶어 문신을 시작했죠. 몸과 성별은 우연의 산물이잖아요. 반대로 제게 문신은 의지를 몸에 새기는 문화적인 행위예요. 문신이 늘수록 구속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드는 이유죠.”

‘새로 태어난 슬기로운 아이’란 뜻의 이름을 지닌 정새난슬은 ‘돌싱’이다. 2013년 음악인과 결혼했다 지난해 7월 갈라섰다. “가부장적인” 남편에 대한 실망과 산후우울증 등이 이혼한 원인이다. 그는 엄마가 된다는 건 “불안, 불평등, 우울”을 견뎌내야 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산후우울증을 겪다 “자살시도”까지 했다. ‘다 큰 여자’의 은밀한 상처는 책에 다 담겨 있다. 이혼을 앞둔 여성에 심리적 위안이나 이혼을 고민하는 여성의 ‘자기 계발’을 위해 낸 책이 아니다. 그는 “편견의 기록”이라고 했다. 문신과 출산을 했던 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사회적 편견을 기록으로 남겨 공유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다 겪는 산후우울증인데 유난이라고요? 저도 (미국 여배우)브룩 쉴즈가 산후우울증으로 항우울제를 맞아 구설에 올랐을 때 유난을 떠네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아니더라고요. 산후우울증은 좀 더 공개적인 장으로 나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책 속에 담긴 여성의 편견에 대한 기록을 제 사적인 얘기로만 치부하는 건 사회적 문제를 축소하는 거라 생각해요.”

이혼의 아픔은 정새난슬이 앨범을 내는 데 가장 큰 동력이 됐다. “악보 보는 법을 모른다”는 딸의 앨범 작업을 도와준 건 아버지 정태춘이었다. 딸이 작사와 작곡을 해 오면, 아버지는 편곡을 해 곡에 거름을 줬다. 낭만만 있었던 건 아니다. 1집 수록곡 ‘퍼키팻의 나날들’을 녹음할 때는 건반 소리를 넣느냐 빼냐를 두고 부녀가 다투다 일주일 동안 말을 안 했단다.

전반적으로 곡을 멜로디로 꽉 채우지 않고 공백을 둬 울림이 깊다. “부모님의 음악적 재능은 1%도 물려받지 않은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엄살이라 농담하자 다시 그의 열변이 돌아왔다.

“누군가 저더라 ‘문화적 금수저’라고 하더라고요. 정태춘·박은옥 밑에서 나고 자랐다고요. 충격적이었죠. 전 지금 악보도 못 봐요. 주위에서 정태춘·박은옥 딸로 바라보는 음악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커 난독증 같은 게 있거든요. 물론 지금은 조금씩 익숙해져 부모님이 제 삶의 모델이 되긴 했지만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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