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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그녀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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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그녀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까닭

입력
2016.05.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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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방영한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주연 배우 김선아와 최근 방영 중인 tvN '또 오해영' 의 주연 배우 서현진. MBC·tvN 제공
2005년 방영한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주연 배우 김선아와 최근 방영 중인 tvN '또 오해영' 의 주연 배우 서현진. MBC·tvN 제공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오해영도 그렇다.

흙수저에 파혼까지 당한 못난이 오해영(서현진)이 시청자는 오히려 예쁘다. KBS '태양의 후예'의 똑순이 강모연(송혜교)으로 대리만족을 했다면 오해영을 통해서는 위로를 받는다. '그냥 오해영'을 소화하기엔 배우 서현진의 외모가 출중한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의 털털한 생활 연기가 괴리감을 벗어나게 한다. '예쁜 오해영'(전혜빈)에게 치이는 '그냥 오해영'의 모습은 평범한 것이 서러운 이 시대 '삼순이'(MBC '내 이름은 김삼순' 여주인공 캐릭터)의 무릎을 치게 했다.

신선한 드라마는 아니다. '태후' 속 군인과 의사 구도, 군대 어투의 대사와 같은 독특한 코드도 적다.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이 돼버린 '흙수저 여주인공' 설정은 고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외모도, 직업도 중간은 가는 오해영이 왜 흙수저로 그려져야 했을까. 또 흙수저 여주인공 컨셉은 왜 10년이 지나도록 깨지지 않는 걸까.

1. 흙수저 '또 오해영' vs 금수저 '루루공주'

로맨틱 코미디가 유행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장르에는 '재벌 남자, 서민 여자' 설정이 필수적으로 들어갔다.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캔디형 여주인공은 MBC '옥탑방 고양이', SBS '파리의 연인', MBC '내 이름은 김삼순' '궁', KBS '꽃보다 남자' 등을 거치며 조금씩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진화했다.

제작자들이 흙수저 여주인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치가 말해준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2003년 SBS '파리의 연인'은 평균시청률 41.1%를, 2005년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은 평균 시청률 37.4%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드라마 장르가 다양화, 세분화된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SBS '상속자들', tvN '연애 말고 결혼', MBC '그녀는 예뻤다' 등이 흙수저 여주인공을 내세워 좋은 성적을 거뒀다.

대전에 사는 직장인 임은서(가명·33)씨는 "흙수저 여주인공 설정이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재벌가 아가씨 이야기보다 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여주인공의 문제 해결 과정을 나의 상황에 대입해 보게 된다"고 말했다.

2003년 방영된 SBS '루루공주'는 비현실적인 스토리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해 혹평 받았다. SBS 제공
2003년 방영된 SBS '루루공주'는 비현실적인 스토리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지 못해 혹평 받았다. SBS 제공

반면 재벌 여주인공으로 차별화를 꾀한 드라마는 현실감 떨어지는 스토리로 혹평 받거나 흥행 참패의 쓴 맛을 봐야 했다. 2003년 SBS '루루공주'는 방영 초반 20% 이상 시청률(시청률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 기준)을 기록했으나, 비현실적인 스토리텔링과 지나친 간접 광고로 15회 만에 시청률이 7.9%로 하락했다. 2007년 MBC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흙수저 여주인공을 맡아 주가를 올린 배우 윤은혜는 차기작 KBS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재벌 상속녀 연기가 어색하다는 혹평까지 받았다.

2. 삼순이가 오해영이 되기까지

2000년대 초반에는 흙수저 여주인공이 재벌 남자의 도움으로 금전 문제를 해결하거나, 위기를 넘기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유행했다. 여주인공 캐릭터가 수동적이다 보니 연애 과정에서도 남자가 주도권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SBS '파리의 연인'에서 강태영(김정은)은 "이 남자가 내 사람이다. 왜 말을 못해"라고 외치는 한기주(박신양)에게 "내 자존심 세우자고 당신 망신 줄 순 없잖아요"라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주인공은 더 나이가 들었지만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김선아)은 고졸 학력에 무직, 통통한 몸매의 노처녀로 그려져 실제 노처녀들의 판타지를 채웠다. 2004년 KBS '올드미스 다이어리', 2007년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도 노처녀의 억척스러운 모습을 살려 좋은 성적을 거뒀다.

최근엔 갈등을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캐릭터가 각광 받는다. 지난해 MBC '그녀는 예뻤다'의 가난한 추녀 김혜진(황정음)은 무시 당하던 인턴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직원으로 성장해 실제 직장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능동적인 여주인공은 연애를 할 때도 거침없다. tvN '오 나의 귀신님' 나봉선(박보영)은 남자주인공이 피해 다닐 정도로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KBS '태양의 후예' 강모연도 먼저 얼굴을 당겨 키스하는 등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오해영 역시 할 말은 하고 사는 능동적인 여성이다. 16일 서울 청담CGV씨네시티에서 진행된 '또 오해영' 기자간담회에서 배우 서현진은 "오해영은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오해영을 닮고 싶어하는 여성 시청자의 마음이 흥행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오해영'의 한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주인공의 직장생활과 성장 스토리도 중요한 흥행 요소다. 오해영이 사랑과 일 모두 해피엔딩을 맞길 바라고 응원하는 현상이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3. 동화적 판타지보다 '현실적 판타지'

지난 10여년 간 드라마판에 많은 변화가 일었지만 흙수저 여주인공은 한결같이 살아있다. 이들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CJ E&M 이상희 프로듀서는 "보통 사람인 시청자가 보통 사람들의 얘기에 공감하지 않겠느냐"며 "박해영 작가도 오해영과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해 시청자가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를 끌어내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흙수저 여주인공이라고 모두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존적인 성향의 '신데렐라'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스토리가 더 현실감 있는 판타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제 겪을 수 있는 극 중 에피소드를 자신의 상황에 대입하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또 오해영'을 즐겨본다는 이해리(28)씨는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흙수저 여주인공을 보면 꼭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해피엔딩을 맞는 모습을 보면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할 내 모습이 그려진다"고 말했다.

이 프로듀서는 "요즘 드라마는 자수성가 같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소소한 성공이 그려진다"며 "이제 동화적인 판타지보다 현실적인 판타지가 통하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또 오해영'이 6회 시청률 6%(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고공행진하고 있는 사이, SBS에서는 흙수저 공심이가 출격했다. 지난 14일 첫 방송한 SBS '미녀 공심이'에서 주인공 공심이(민아)는 못생긴 취업준비생으로 그려졌다. 못난 여주인공 공감 코드가 어김없이 맞아떨어지면서 '미녀 공심이'는 방영 3회 만에 시청률 10.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한편 오는 25일 배우 황정음이 출연하는 '운빨 로맨스'도 출격해 로맨틱코미디 대전에 열기를 더할 예정이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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