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불구 미지급 2465억원
생보사 “판결 전 지급 시 배임 논란”
금융감독원이 소멸시효 2년이 지난 경우에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보험사들에게 강력한 지침을 내렸다.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둘러싸고 수년간 지속돼 온 생명보험사와 소비자 간 법정 다툼에서 대법원이 소비자 손을 들어줬음에도 ‘소멸시효 경과’ 등을 이유로 지급을 유보하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여전히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이 많은데다 소멸시효 논란도 지속 중이어서 생보사들은 상당히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23일 브리핑을 열어 “보험사들이 보험 청구권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자살보험금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어떠한 형태든 보험금이나 이자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재해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논란은 2014년 ING생명 등 생보사들이 뒤늦게 “약관 작성 때 실수가 있었고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없다”며 금액이 2분의 1~ 3분의 1 수준인 일반사망보험금으로 지급하면서 불거졌다. 금감원이 그해 ING생명 등을 제재하면서 명시된 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지만, 생보사들이 반발하면서 소송이 이어졌다. 결국 지난 12일 대법원이 “약관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지만, 생보사들은 일부 계약의 ‘소멸시효 경과’를 이유로 또다시 보험금 지급을 유보해왔다.
금감원이 이날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약관에 따라 지급하라”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든 수익자의 권익이 침해돼선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금감원은 특히 “생보사들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대로라면 과소 지급한 뒤 장기간 경과하면 금융회사의 지급의무가 없어지게 돼 부당하다”며 “보험사들은 대법원 계류를 이유로 더 이상 사망보험금 지급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의 방침에 따라 생보사들은 미지급한 재해자살 보험금 2,465억원(2월말 기준)과 지연이자 수백억원을 부담해야 할 전망이다. 이중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보험사들이 주장하는 보험금은 2,003억원(81%)에 달한다. 이에 대해 한 생보사 관계자는 “상장사의 경우 무작정 보험금을 지급했다가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며 “만약 보험금을 지급한 후에 대법원이 보험사 승소 판결을 내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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