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를 외교 현안의 ‘레거시’(Legacyㆍ치적)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하고 쿠바와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데 이어 이번에는 베트남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해 아시아국가들과의 구원(舊怨) 해소에 나선다. ‘과거와 화해한 대통령’이라는 외교적 업적을 겨냥한 행보로 볼 수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 따르면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듬해 집권한 오바마 대통령이 당초 희망한 치적은 안으로는 ‘미국 경제를 살려낸 대통령’, 밖으로는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었다.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이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 만큼 경제 분야에서는 당초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슬람국가(IS) 발호와 계속되는 이라크ㆍ아프간 전쟁으로 외교분야의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됐다.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중 새로 제시한 ‘과거 적대국과의 화해’는 외교 분야에서 양보할 수 없는 레거시 후보로 자리 잡게 됐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자(조지 W. 부시)가 ‘악의 축’으로 꼽은 이란, 쿠바, 북한 중 북한을 제외한 두 나라와 관계 정상화를 이뤄냈다. 이란과는 핵 협상을 타결했고, 쿠바와는 외교관계 복원과 함께 재임 중의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쿠바를 방문했다.
21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지는 베트남, 일본 방문은 화해의 폭과 대상이 1970년대 이전 과거 ‘적국’으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관계 정상화는 이뤘으나 가슴 속에 맺힌 역사의 상흔까지 덮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AFP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은 20세기에 치러진 두 개의 전쟁에 따른 고통스러운 장(章)을 매듭짓는 목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에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실용적 포석도 읽힌다.
재임 중 처음이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세 번째 방문인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으로 양국 관계는 완전 정상화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대 베트남 무기 금수조치 해제 등으로 동맹에 준하는 관계 형성까지 예상된다.
27일 오후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방문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불행한 과거와의 화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번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중 4차례의 ‘핵안보정상회의’를 주도하며 구체화한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명분에 더 부합한다.
물론 엄격히 따지면 ‘과거 적대국과의 화해’, ‘핵 없는 세상’ 등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에 기록되길 원하는 레거시는 북한 변수로 빛이 바래게 됐다. 2012년 ‘2.29 합의’ 직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틀어진 이후 ‘전략적 인내’원칙에 따라 미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초 국정연설에서 외교적 치적을 소개한 과정에서 북한을 완전히 배제한 데 이어, 이날 방송된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은 핵 기술을 확산시킨 과거가 있기 때문에 우려하고 있다”며 북한을 화해의 대상이 아닌 감시와 제재의 상대임을 분명히 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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