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렸던 지갑을 이십여 일 만에 찾았다. 우체국 택배로 되돌려 받은 지갑은 잃어버릴 때의 상태 그대로였다. 길에서 주운 돈을 주인에게 되돌려주지 못한 적이 있던 내겐 퍽 감사한 일이다. 시력이 나쁜 데도 나는 길에서 지갑이나 돈을 주운 적이 여러 번 있고, 그 중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다. 어느 해 연말, 빨간색 장지갑을 경복궁역 근처에서 주웠다. 김점선 화백과 기자인 친구와 나, 셋이 걷다가 길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보고 주워든 사람은 나였다. 지갑 속에는 현금 삼천 원과 우리나라 최대 법률회사의 식권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딛는 어린 딸에게 힘을 내라고 써준 엄마의 편지와 신분증도 있었다. 여고 졸업을 눈앞에 둔 딸이 그 회사의 말단사원으로 취직되어 첫 출근을 하던 날 아침에 엄마가 건넸을 편지에는 자식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절절했고, 격려와 사랑도 담겨 있었다. 어쩌다 그걸 읽은 우리는 지갑의 주인이 절대로 기분 상하지 않고 잠깐이라도 환히 웃을 수 있도록 뭔가를 해줄 궁리를 했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의 제의에 따라 ‘사회의 대선배 언니들’이 왔다 간다는 내용의 짧은 편지와 함께 각자 만원씩을 지갑에 넣어 로비에 있는 직원에게 맡겨두고 도망치듯 돌아왔다. 그때 지갑을 잃었던 여학생도 이제는 삼십 대 중반의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겠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