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ㆍ닛산 배기가스 조작
디젤차, 미세먼지 등 주범 낙인
세계 각국 규제 강화 쇠락의 길로
친환경차 시대는 더욱 가속 예고
IT와 궁합 맞는 전기차 급부상
지난해 터진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파문은 디젤차 몰락의 전주곡이었다. 최근에도 닛산 ‘캐사카이’ 등 인증 시험 통과 뒤 도로에서 오염 물질을 마구 뿜어내는 디젤차의 실체가 세계 각국에서 드러나고 있다. 디젤 엔진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며 자동차 산업의 중심추는 친환경차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디젤차의 인기를 이어받을 친환경차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셈법도 더 복잡해지고 있다.
‘계륵’으로 전락한 디젤차
국내에서 디젤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0년 신규 등록 승용차 중 연료로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는 차는 84만3,097대로, 디젤 엔진(22만9,227대)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그러나 2011년부터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인 디젤 승용차는 급기야 지난해 68만4,383대가 등록되며 2,921대 차이로 가솔린차를 처음 추월했다. 고성능 디젤 엔진을 표방한 독일산 수입차들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대부분 디젤 엔진이 탑재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폭발적인 인기는 디젤차의 질주를 이끌었다.
그러나 잇단 배출가스 조작에 심각한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면서 디젤차는 이제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였다. 인도 대법원이 올해 초 3개월간 수도 뉴델리에서 배기량 2,000㏄ 이상 디젤차 등록을 금지시키는 등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에서도 디젤차를 옥죄고 있는 상황이다. 디젤차의 본산인 독일마저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디젤 승용차 개발에 열을 올렸던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디젤 모델 출시를 주저하는 분위기다. 한국지엠(GM)은 인기를 끌고 있는 중형 세단 ‘올 뉴 말리부’의 디젤 모델을 만들지 않기로 했고, 르노삼성자동차도 지난해 ‘SM5 디젤’을 단종시켰다. 르노삼성은 ‘SM6 디젤’은 준비 중이지만 출시 시점은 못박지 못하고 있다.
독일 디젤차를 따라잡기 위해 절치부심 해온 현대자동차는 다음달 이름을 ‘제네시스 G80’로 바꾸고 상품성을 개선한 제네시스(DH)를 가솔린 모델부터 내놓는다. 디젤 엔진을 얹은 G80도 개발을 마쳤지만 출시는 하반기 이후 검토 예정이다.
내년 9월부터 3.5톤 미만 디젤차 배출가스에 실도로조건 기준이 적용되면 디젤차의 입지는 더 좁아진다. 2019년까지 도로 주행 시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실내 인증 기준(0.08g/㎞)의 2.1배, 2020년부터는 1.5배까지만 허용된다. 환경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20개 디젤차의 배출가스 측정 결과를 보면 현재 이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건 BMW 520d(0.07g/㎞) 하나뿐이었다.
친환경차의 패권 PHEV냐, BEV냐
디젤차의 몰락으로 친환경차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국가별로 친환경차에 대한 정의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하이브리드차(HEV)와 플러그 인(충전식) 하이브리드차(PHEV), 순수 배터리 전기차(BEV), 수소연료전지차(FCEV)를 친환경차로 분류한다.
업계에선 통상 기술 발전 속도에 따라 HEV→PHEV→BEV→FCEV 순서로 친환경차의 중심이 이동할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완성차 업체들이 방점을 찍는 친환경차에는 차이가 있다.
프리우스로 양산형 HEV 시장을 개척해 지난달까지 세계 시장에서 HEV 누적 판매량 900만대를 판매한 도요타는 HEV와 FCEV에 주력하고 있다. 두 차종은 번거로운 외부 전기충전이 필요 없다는 게 공통점이다. 세계 2위 HEV 업체인 혼다도 도요타처럼 HEV에 이어 FCEV 시장을 조준했다. 그러나 르노-닛산은 HEV를 건너 뛰고 BEV를 만들었다. 바로 BEV에 달려든 것은 엔진 기술력이 딸리는 중국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반면 제너럴모터스(GM)는 PHEV인 ‘볼트’(Volt)를 거쳐 BEV인 ‘볼트’(Bolt)로 나아갔다. 현대ㆍ기아자동차는 네 종류의 친환경차를 모두 만들고 있다.
3시리즈와 7시리즈를 비롯해 SUV까지 PHEV로 변환한 ‘i-퍼포먼스’ 모델을 출시 중인 BMW는 PHEV를 대세로 보고 있다. 로버트 마이어 BMW 상품 전략부문 수석부사장은 “PHEV의 전성기는 20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PHEV는 충전에 대한 압박이 없는데다 엔진과 변속기 등 기존 업체들의 강점이 유지돼 급격한 변화가 없다는 장점을 가졌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업계에선 결국 PHEV가 대세가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변수가 생겼다. 테슬라가 2년 뒤 보급형 BEV ‘모델3’ 양산에 성공할 경우 BEV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보기술(IT) 업체들까지 경쟁적으로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 카’는 기계식 장치인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신호로 모터를 제어하는 BEV와 궁합이 잘 맞는다. 기술 개발이 가속되면 PHEV가 전성기에 진입하기 전에 BEV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어떤 차가 친환경차의 대세가 되느냐는 아직도 안개 속”이라며 “그러나 이 결과에 따라 5년, 10년 뒤 업체들의 희비는 크게 엇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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