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MIT 관련성 증명 난관 예상
건보 진료기록 활용 등 주장도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인정 범위를 폐 이외의 질환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조사범위가 크게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와 다양한 질환들의 인과관계를 확인하려면 장기간에 걸친 조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환경부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조사ㆍ판정위원회는 1, 2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조사 신청자 530명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환 자료를 확보했으며, 이를 분석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있는 질환을 선정할 예정이다. 이후 다음달부터 국내 한 대학에서 동물실험 및 역학조사를 진행해 내년 말까지 폐 이외 질환에 대한 판정기준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530명은 조사 범위가 너무 좁다고 보고 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 2차 신고자들은 주로 폐 및 호흡기 질환 등에 대한 피해자들이어서 폐 이외 질환의 범위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조사대상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판기 용인대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피해자 외에) 가습기에 노출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노출된 사람이 어떤 증상과 병변을 가졌는지 특성을 도출해야 한다”며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몇 만명 정도는 조사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난해 말 성인 1,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22.0%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경험이 있고, 사용자 5명 중 1명은 “호흡기 질환 등 건강상 피해가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조사를 한 적은 없으므로 피해 범위 확대에 앞서 피해 규모와 질환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피해자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조사에 훨씬 오랜 시간과 비용, 인력이 소모될 것으로 보인다.
난관은 조사대상이 될 질환들과 가습기 살균제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에 있다. 특히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ㆍ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 성분의 피해자들에게 많은 비염, 기관지염 등이 과연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것인지 확인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판기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노출이 확실하게 있었고, 노출 기간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서 다른 합병증이 같이 나타난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이렇게 인정할 경우 피해자가 과도하게 많아진다는 의견도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의 특이성을 도출해 인과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ㆍ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세계 최대 석면 회사였던 맨빌의 피해자 소송을 보면, 석면이 포함된 건축자재를 사용한 건물에 얼마나 살았는지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 석면에 의한 진폐증이라는 임상 자료를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도 건보공단 진료기록을 활용해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천식 등은 다른 원인에 의한 천식과 양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해 임상자료가 부합하면 상관관계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폐 섬유화 외에 다른 질환의 특이성을 확인하려면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데다, 결론도 예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530명만 조사하고 있지만 필요하면 추가할 수 있다”며 “인과관계는 역학조사와 동물실험을 통해 규명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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