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찜질방 전전 4개월 도피
휴대폰 등 소지품 하나 없이 자수
이민희(56)씨는 20일 자정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교보생명 사거리쪽 공중전화에서 검찰에 자수 의사를 밝혔다. 검찰 수사관의 검거 당시 그는 휴대폰 등 중요 단서가 될 소지품 하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1월 중순 이후 4개월간 도피생활에 지쳤는지 이씨를 본 수사관은 “물병도 제대로 들고 있지 못할 정도로 수척해 있었다”고 전했다.
이씨는 도피기간 경기 하남ㆍ남양주시 등 서울 근교의 찜질방을 전전했고, 충청도 아산ㆍ청주시도 가끔 오가며 수사망을 피했다. 그는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로비를 벌인 의혹 등으로 구속된 최유정(46) 변호사가 체포된 전북 전주에도 한 번 다녀갔다. 이씨는 그러나 “최 변호사를 만나려 내려간 것은 아니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씨의 자수배경에 대해 검찰은 “도피자금이 떨어진 차에 감경의 여지가 있다는 검찰과 지인들의 설득을 듣고 결심한 것 같다”고 전했다. 고교 선배이자 검찰 수사대상인 홍만표(57) 변호사의 자수 권유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건설업자, 호텔 부회장직, 코스닥 상장사 대표 등 여러 개의 명함을 파고 다니며 인맥을 다져온 거물 법조브로커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정 대표의 도박사건 2심 첫 재판장이던 임모 부장판사와 2년여 전부터 알고 지내며 식사대접을 해왔다. 이씨는 여동생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정식집에 법조인과 사업가들을 초대하고 연예인 등을 동석시키기도 했다. 홍 변호사와는 오래 전부터 친분을 쌓아 왔으며, 정운호 대표와 홍 변호사를 연결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의 대화내용이 담긴 녹취록에는 정ㆍ관계 인사의 실명이 거론되고, 한 경찰 간부는 집무실에서 이씨와 찍은 기념사진이 공개돼 구설에 오르는 등 이씨는 화려한 인맥을 과시했다.
그는 2007년 회삿돈 32억원을 횡령했다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전력이 있으며, 빌린 돈을 갚지 않아 경찰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이씨가 검거되면서 수배 중인 또 다른 거물 브로커 이모(44)씨의 행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유정 변호사의 측근인 이씨는 이민희씨가 법조계 인사 등을 상대로 벌인 접대 내막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씨 자신도 검사와 수사관, 경찰 등 수사기관 관계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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