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다란 장미 한 송이는 온통 붉은 색이었다가, 붉은 색 속 발그레한 볼처럼 분홍이 되었다가, 흔들리는 분홍 속에서 언뜻 언뜻 흰색이 보여요. 그것은 내가 그리워하는 한 여자의 얼굴이었을까요. 먼저 허공에서 닿아보는 그림자들이었을까요. 장미 속에 장미가 있고 그 장미 속에 또 장미가 있어요. 정원을 홀로 거니는 여자예요.
나는 단추 두 개가 모자라는 옷을 입고 있어요. 제어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정처 없음이 되지요. 나의 정처 없음은 보리수 늘어선 한길에 이르게 하고, 장미 사이 여자와 눈이 마주치게 하지요. 먼 곳의 여자는 안쪽에 있는 여자예요. 내가 걸어갈수록 안쪽은 선명해져요. 장미를 헤치고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보이지는 않는 보리수가 흔들리는 소리를 들어요. 여자도 나를 향해 걸어왔던 것일까요. 여자는 원 속에 있고 나는 직선으로 걸어가요.
붉음과 흰색 사이 장미. 파랑과 초록 사이 보리수. 단추가 없는 옷과 단추 두 개가 모자라는 옷 사이 한길. 둘이 나눠 가진, 같은 것이에요. ‘아니’는 아폴리네르가 좋아했던 여자 ‘애니 플레이든’이라 하지요. ‘애니’가 아니라 ‘아니’라는 제목은 번역가인 황현산 선생님의 감각이지요. 주석 없이 시부터 읽을 때, 한국어로도 이중의 느낌을 갖게 하지요. 이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이 읽을 만한 것을 만들어내”(황현산)는 아폴리네르의 언어에, 번역이 육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언어에 한계를 느낄 때 이 시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는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4D 화면처럼 바람과 향기와 눈빛이 담긴 풍경이 떠오르지요. 신기하게도 언어만의 선명함과 맞닥뜨리는 순간이기도 하고요. 좋은 번역은 이런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지요.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