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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하고... 비판하고... 칸은 솔직했다

입력
2016.05.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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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박수 소리가 있습니다. 지난 13일(현지시간)과 14일, 18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69회 칸영화제의 공식 상영회에서 뤼미에르 극장을 수놓은 한국영화 ‘부산행’과 ‘아가씨’ ‘곡성’이 만들어낸 갈채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지난 14일 밤 10시(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영화 ‘아가씨’ 공식 상영회에서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찬욱 감독이 지난 14일 밤 10시(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영화 ‘아가씨’ 공식 상영회에서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세 영화는 2,000석 규모의 뤼미에르 극장이 떠나갈 듯한 길고 장엄한 기립박수로 한국영화의 위상을 새삼 확인케 했습니다. 특히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한국형 좀비영화 ‘부산행’은 밤과 잘 어울리는 장르 덕을 봤는지 관객들의 호응은 뜨거웠습니다.

배우 공유와 마동석, 정유미, 김수안 등이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피해 도망치거나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길 때면 “오~!”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나왔습니다. 특히 마동석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던지고 근육질 몸매를 드러낼 때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그가 감염자들을 하나 둘씩 처치할 때마다 함성은 높아졌습니다. ‘부산행’은 상영 중간중간에 10여 차례 이상 박수를 받으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습니다.

‘부산행’을 함께 지켜 본 국내 기자들도 뤼미에르 극장을 가득 채운 갈채에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동안 칸영화제에서 한국 작품들을 대하는 관객들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코믹과 스릴로 오락성을 만들어내며, 묵직한 사회 풍자 메시지까지 던진 ‘부산행’에 공감하며 격려한 칸의 모습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아가씨’ 상영 뒤 5분여 동안 이어진 기립박수는 영화에 대한, 박찬욱 감독에 대한 신뢰로 보였습니다. 영화 속 동성애 코드는 분명 대중적이진 않으나 동양적인 색채를 가미해 과감한 표현 수위를 선보인 박 감독의 도전에 대한 예우가 엿보였습니다.

지난 18일 밤 10시(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영화 ‘곡성’의 공식 상영회가 끝나자 2,000여 명의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지난 18일 밤 10시(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영화 ‘곡성’의 공식 상영회가 끝나자 2,000여 명의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곡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세 작품이 칸의 초청을 받으며 명실공히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 됐죠. 그런 칸의 기대감은 ‘곡성’ 상영회의 열기로 이어졌습니다. 굿과 무당, 악마 등 하나만 다뤄도 버거울 소재인데 관객들은 아낌없는 기립박수로 나 감독과 곽도원 등 배우들을 격려했습니다. 기립박수에 놀란 곽도원이 2층까지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땡큐!”라고 소리를 지른 것도 아마 벅찬 감동에서 비롯된 것일 겁니다.

그러나 칸을 찾는 영화라고 모두 기립박수만 받는 건 아닙니다. 칸의 관객들은 솔직하기로 유명합니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은 칸영화제에 마음의 작은 상처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연출한 ‘돼지의 왕’이 4년 전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면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칸을 찾았습니다..

날 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돼지의 왕’은 잔인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상영회 도중 객석에선 욕설이 튀어나왔고, 야유를 퍼부으며 자리를 뜨는 관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연 감독은 “당시 기억 때문에 ‘부산행’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초청이 결정된 뒤 더 긴장됐다”고 하더군요. 연 감독은 칸영화제의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관객 반응이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하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칸의 더욱 솔직한 반응을 보려면 언론 시사회를 참석해야 합니다. 칸의 경쟁,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들은 대게 두 세 번 시사회를 갖습니다. 공식 상영회외에 언론과 영화 바이어들에게 공개합니다. ‘부산행’과 ‘아가씨’ ‘곡성’ 모두 두 번 이상의 시사회를 가졌습니다.

공식 상영회 아닌 다른 시사회서도 모두 좋은 반응이 나왔을까요? 아닙니다. ‘부산행’은 13일 자정 상영을 한 이후 그날 오후 2시에 언론 시사회를 했는데요. 반응은 냉담했답니다.

7월 국내 개봉 예정인 ‘부산행’은 컴퓨터 그래픽(CG) 등이 미완성인 채로 칸의 무대를 밟았습니다. 부산행 KTX를 공격하는 좀비 무리들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CG의 역할이 중요한데,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공식상영회에서 오랫동안 기립박수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던 ‘부산행’은 언론 시사회에선 똑같은 반응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아가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식 상영회 전에 열린 언론 시사회 역시 박수는커녕 중간에 자리를 뜨는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아가씨’의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동성애 장면을 불편해하거나, 후반부 신체 일부가 절단되는 잔인한 장면에 놀라 자리를 뜨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출연해 관심을 모았던 영화 ‘퍼스널 쇼퍼’도 경쟁부문 진출작인데도 언론 시사회에서 비웃음과 야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퍼스널 쇼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스튜어트는 쿨하게 넘깁니다. 아사야스 감독은 “아마도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다른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고 했고, 스튜어트는 “모두가 야유를 한 건 아니다”며 웃어 넘겼다고 하네요.

한국영화에 이런 야유가 쏟아졌다면 해당 감독이나 배우뿐만 아니라 국내 영화 팬들까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외 영화인들은 남의 비평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영화 ‘퍼스널 쇼퍼’는 17일 오전(현지시간) 언론 시사회에서 야유를 받아 화제가 됐다.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영화 ‘퍼스널 쇼퍼’는 17일 오전(현지시간) 언론 시사회에서 야유를 받아 화제가 됐다.

관객들의 신랄한 비평이나 터질 듯한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건 해외 영화제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단편 영화를 상영한 후에 감독이 잠깐 무대인사를 나온다고 합니다. 그 다음 곧바로 다음 영화를 상영하는 식이랍니다. 이때 관객들은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야유나 욕설을 퍼붓는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무대인사를 나온 감독과 싸움이 벌어질까요? 이들 감독 역시 그런 관객들의 반응에 어깨를 살짝 들썩이고는 “영화 봐줘서 감사하다”는 짧은 말만 남기고 자리를 뜬다고 합니다. 한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예술장르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창작자와 관객이 느끼는 간극은 당연하다고 합니다.

국내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관객도 없을뿐더러 그러한 비평을 온전히 받아들일 창작자도 없을 겁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과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가 발전한 이면에는 어쩌면 이런 건강한 비평 문화가 잘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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