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령이고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제대로 된 배상을 받고 싶습니다. 일본은 이미 죽은 사람을 포함해 모든 피해자에게 제대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정의입니다.”
동티모르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네스 마젤란 곤살베스(92)씨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최한 ‘제1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아 2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동티모르 지역어인 케마크어를 테툼어(동티모르 공용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를 거쳐 한국어로 바꾸는 4중 통역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일을 전했다. “일본군의 명령을 받은 마을 촌장이 저와 다른 마을 소녀들을 보보나로현(縣) 오아트(Oat) 마을로 넘겼어요. 모두 9명이 잡혀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위안부로 생활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두 사람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뒤 마을로 돌아온 곤살베스씨는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다가 2000년 처음으로 이를 알렸다. 2006년에는 동티모르에서 열린 공청회에 나가 자신이 겪은 일을 자세히 증언했다. 그는 위안소에서 딸을 낳아 카이브티(Kaibuti)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일본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아이를 안고 위안소에서 도망가다 일본군과 맞닥뜨렸습니다. 나와 아이를 함께 끌고 가다 내가 저항하자 아이만 데려갔습니다. 아이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죽이겠다고 위협해 결국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2000년 피해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 곤살베스씨가 위안소에서 아이를 낳은 것을 아는 사람은 그의 부모뿐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남편도 그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침묵을 지키다 증언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그는 “그때 다른 지역에서 위안부 피해 증언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그걸 계기로 나도 피해 사실을 밝히고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된 배상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과 동티모르의 여성ㆍ인권 단체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곳곳에서 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듣는 등 공동조사를 시작했다. 동티모르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피해 증언이 이어졌다. 이는 2006년 공청회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동티모르 정부는 아직 일본 정부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집계에 따르면 동티모르의 피해자는 최소 18명 이상이다.
곤살베스씨는 일본의 공식 사죄를 원하는지 묻자 아니라고 했다. “그동안 일본이 사죄했다 하지만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사죄는 어차피 믿을 수 없으니 필요 없습니다. 일본은 모든 위안부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배상을 해야 합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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