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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공정성과 자유무역

입력
2016.05.2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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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역 시스템은 올해 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15년 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여태껏 미뤄졌던 일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무역 정책에서 중국에게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올해 내내 논쟁이 커지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무얼 선택하더라도 현재 세계 무역체제가 지닌 훨씬 심각한 결함들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WTO는 2001년 12월 중국 가입을 승인하면서 무역 상대국들에게 중국을 ‘비시장경제’(NME) 지위로 분류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을 NME로 분류하면 반덤핌 관세라는 방식으로 중국 수입품에 특별 관세를 부과하기 쉬워진다. 이렇게 하면 수입국들은 중국 생산품 에 대한 덤핑 판정 가능성과 예상 덤핑 마진율을 높여서 원가가 더 비싼 국가의 생산물에게 판매 기회를 주게 된다.

오늘날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한국 등 많은 나라들이 이미 중국을 시장경제 지위로 대우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지닌 미국과 EU는 아직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EU가 어떻게 하든 반덤핑 제도를 유지하면서 불공정무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지적에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다. 불공정 무역을 시정하는데 반덤핑 제도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덤핑은 가장 나쁜 종류의 보호무역주의를 조장한다. 반면 적절한 정책적 보호로 경제에 숨통을 열어 줄 필요가 있는 나라에게는 독이 된다.

경제학자들은 결코 WTO의 반덤핑 규정을 환영한 적이 없다. 엄밀한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원가 이하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이러한 전략을 선택한 기업들이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한 수입국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국내 반독점 감시 정책과 제도가 반덤핑 제소가 제기될 경우 해외 기업들이 반경쟁적 행위를 한다거나 이들의 경제 침탈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이유다. 반면 WTO 규정 아래서 수출국이 원가 이하로 가격을 책정하는 건 수입국이 관세를 매기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심지어는 경제 침체 기간이라 통상적으로 가격을 낮춘 것일 때도 그렇다.

이러저러한 절차상의 문제점들을 악용해 기업들은 경제가 어려울 때 해외 경쟁 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반덤핑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WTO는 수입품이 국내 기업에게 ‘심각한 손해’를 입혔을 때 국가가 관세를 임시로 올릴 수 있게 해주는 ‘세이프가드’를 발효할 수 있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주요 수입국들은 까다로운 세이프가드 발효 조건을 무색하게 만들 더 높은 무역 장벽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수단을 사용하는 국가는 이로 인해 불리한 영향을 받는 수출국이 얻어야 할 수익을 가로채고 있다.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WTO가 1995년 설립된 이래 3,000개 이상의 반덤핑 관세가 적용됐다. 인도, 미국, EU가 이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들이다. 이에 대응해 세이프가드로부터 보호를 받은 국가는 단지 155개에 불과하며 대부분 개발도상국들이다. 분명히 반덤핑은 무역을 방해하는 데 사용되는 처방이다.

물론 세계 무역 체계는 경제적 효율성은 물론 공정무역 문제도 고심해야 한다. 국내 기업이, 예를 들어 자국 정부에 의해 충분하게 재정적으로 지원을 받는 중국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길 만큼 여러모로 불공평해진다. 어떤 유형의 경쟁 우위는 국제 무역의 정당성을 저해한다. 설사 그런 유형의 경쟁 우위가 수입국에게 종합적으로 경제 혜택을 준다 해도 그렇다. 그래서 반덤핑 체제에는 정치적 논리가 있다.

무역 정책입안자들은 이런 논리와 매우 친숙하다. 반덤핑 제도가 상대적으로 쉬운 보호무역 장치를 쓸 수 있게 하면서 현재 형태로 존재하는 이유다. 무역 관련 공무원들은 공정성 논란이 덤핑에 관한 영역 너머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굳건히 지탱해주는 외국 기업과 그렇지 못한 국내 기업이 경쟁하도록 하는 게 불공정하다면, 사용자의 갑질을 막을 보호장치나 단체교섭 같은 기본적인 권리마저 누리지 못하는 해외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가 경쟁하도록 하는 것 역시 비슷하게 불공정하지 않을까. 환경을 훼손하거나 어린이에게 일을 시키거나 위험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게 하는 기업들이 있다면 이 또한 불공정 경쟁이 아닌가.

불공정 무역에 대한 그러한 염려는 세계화를 격렬하게 반대하는 움직임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법적인 무역 개선책은 그러한 염려가 원가 이하 가격 책정이라는 비좁은 상업적 영역 내에만 머물도록 만든다. 노동조합, 인권 비정부기구(NGO), 소비자 그룹, 환경단체는 기업처럼 직접적으로 보호 장치를 쓸 수 없다.

무역 전문가들은 세계경제가 보호무역주의로 급격히 쏠릴까 우려한 나머지 WTO가 노동ㆍ환경 표준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이슈들을 배제하면 더 큰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아주 다른 경제 사회 정치적 모델을 지닌 나라들 간의 무역은 정당성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제기한다. 그러한 관심을 인정하지 않으면 교역 관계에 해가 갈 뿐만 아니라 전체 세계 무역 체계의 정당성이 위험에 빠진다.

공정한 무역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민주주의 국가와 비민주주의 국가가 무역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업적 논리가 경제적 관계를 좌우하는 유일한 고려 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의 사회적 조정에 대한 부담 비용으로 무역 수익을 얻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반드시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공공의 토론과 신중한 협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엇이 더 가치 있는지 가리고 위기에 빠진 교환거래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중국 같은 나라들과의 무역 분쟁은 이러한 이슈들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세계 무역 체계의 민주화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 교수ㆍ경제학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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